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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9일 530GP 총기난사사건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Flyturtle Studio 2013. 7. 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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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파일의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라는 제목은 일부 피해자 유가족의 당시 북한의 소행이란 의혹 제기와 주장을 통해 군 보고 체계와 사건 처리 과정 상의 미흡한 대처 및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군 현실을 고발하려는 의도로 읽히므로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한 역설적 표현이라 보여진다.




2005년 6월 19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28사단 소속 530GP에서 큰 폭음이 울렸다. 이어 총소리가 GP를 가득 메웠고, 8명의 장병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짧은 청춘을 마감했다. 군은 소대원이었던 김동민 일병이 선임들의 욕설과 질책으로 GP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저지른 단독 범행으로 결과를 발표하며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김 일병은 현장에서 체포 됐고,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11년 현재, 유가족들은 아직도 '진실'을 찾고 있다. [기획/제작 : 정승권 박기묵]





유가족 측은 희생장병들의 몸에서 나타난 상처가 총과 수류탄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530GP 총기난사 사건은 아군이 차단 작전 중 북한군으로부터 미상화기 피격을 당한 것이라 주장했다. 취재진은 사건 당시 생존소대원들과 희생장병들을 검안을 했던 군의관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군의관은 군 측이 이번 사건의 처리를 부검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종결시켰으며, 그런 군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가족 측은 희생장병들의 전투복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군대 내 사망사건의 경우, 전투복이나 유품은 유가족에게 돌려주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증거 채증을 마친 후 필요 없는 증거자료 차원에서 일괄 소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군 측의 답변은 오히려 유가족 측의 의문만 증폭 시키는데... 

V파일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제3편 '유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이에 대해 국방부는 '증거 채증을 마친 후 필요 없는 증거자료 차원에서 일괄 소각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군 측의 답변은 오히려 유가족 측의 의문점만 증폭 시키는데... V파일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제3편 유품에서 논점이 되는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





고(故) 이건욱 병장의 아버지 이문형 씨는 2005년 6월 19일에 있은 530GP 총기난사 사건 때 "군 측이 의도적으로 후송을 지연시켜 아들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희생장병 유가족 측은 "당시 북한군에 의한 피격의 증거를 숨길 시간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후송이 지연됐으며 과다출혈로 이건욱 병장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측은 "DMZ 출입 규정에 의해 시간이 걸렸지만, 비교적 빠른 조치였다"고 반박하는데... V파일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제4편 '부상자 후송 지연'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





2005년 6월 19일에 있은 530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장병 유가족 측은 군 측의 전반적인 사건 처리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고(故) 이태련 병장의 어버지 이찬호 씨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군이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 모습을 보고 의혹이 생겼다"고 밝혔다. 당시 검안을 담당했던 군의관 역시, 사건 당시 사건을 처리하는 장면을 회상하며 "중장부터 이병까지 우왕좌왕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고 직후 기적적으로 생존한 소대원들도 수사 명목으로 특별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현장검증과 사건조사에 불려 다녔다. 생존 소대원 이 모 이병은 "험악한 분위기와 강압적인 수사방식에 생존 소대원들은 충격이 컸다"고 밝혔다. V파일 '김 일병은 죽이지 않았다' 최종편인 제5편 '시스템 부재'에서 논란이 되는 군의 시스템 문제점을 되짚어 보았다.
















[군에서 발표한 그당시 내용]

"북한 병사 리동수는 넘어 왔지만 이 지역 GP들은 모두 야간 차단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 530GP는 옥상 경계근무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내무반 군기도 형편없었다. 10여 명의 선임자들이 김동민 일병을 못살게 굴었고, 이에 앙심을 품어오던
김동민 일병이 계획적으로 내무반에 있는 장병들을 몰살시키고 GP 전체를 불태워 버리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의문 6가지]

① 530GP를 제외하고 좌우측의 520GP, 531GP만 당시 최고 수준의 경계령인 '진돗개 둘' 발령?
- GP에서 명령하달시 인근 GP와 함께 발령되는 것이 당연하다.

② 내무실 내부 취침자들의 위치가 뒤죽밥죽이다?
- GOP근무 경험자로서 분대단위로 모여 취침하게 된다. 머리는 중간 통로를 향한다.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지대에서 자기 관물대가 아닌 남의 관물대에서 취침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상황 발생시 오합지졸)

③ 김동민 일병이 만졌던 물건들은 무려 8개나 있지만 그 어느 것에서도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 수사실무 책임자는 총에 남겨진 지문의 감식율은 23%이고 탄창에 남긴 지문의 감식율은 5.5%라고 답했다.

④ 총상의 흔적들을 보면, 총탄이 춤을 춘다?
- 사입구의 구멍이 너무 크다. 시신에다 대고 사격하지 않고서는 이럴수 없다. 근육의 수축에 의해 구멍이 작아야 정상.
사입구와 사출구라는 주장에 일리가 없다.

⑤ 사건 현장인 내무실의 관물대, 침상 모두 혈흔과 파편, 총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내무실 내부에 수류탄 폭발시 폭풍 효과로 주변은 탄흔적이 발생되어야 한다. 총기의 근접적 화력은 비무장한 인원을
몇 명이나 뚫을 수 있으므로, 내부반 내에 총탄의 흔적이 남아야 한다.

⑥ 생존 소대원 24명 중 21명이 집단적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
- 김일병이 벌인 사건이 사실이라면 왜 국가유공자가 되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국가유공자시 급에 따라 월 고정금액을 지급하며, 여러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싸이월드홈피자료펌)









출처 : http://blog.naver.com/seonbok/120159771224http://goo.gl/Qby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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