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심층해부]
①그들의 '오늘'
②그들의 '학교'
③그들의 '비행'
④그들의 '가정'
⑤그들의 '내일'
대한민국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다. 죄를 짓는 10~14살의 아이들, 바로 '촉법소년'이 갈수록 늘면서다. 초등4년~중등2년인 이들 '로틴'(low-teen)은 하이틴이나 성인들도 혀를 내두를 강력범죄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낮엔 '일진', 밤엔 '가출팸'이 되기도 하는 이들의 실태와 그 해결 방안을 조명해본다. [CBS노컷뉴스 김연지 기자 ]
① 그들의 '오늘'
성인범죄자 뺨치는 아이들 갈수록 늘어…별 제재 없어 '재범의 늪'
10년 전 서울의 한 교회에서 벌어진 망치 살인 사건. 주인공은 다름아닌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 A 군이었다.
가출한 뒤 생활비를 구하려 교회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이 교회 권사에게 들키자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것.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한마디가 화근이 됐다.
소년원에서 2년을 보낸 A 군은 아무 일도 없던 듯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어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처벌 안 받잖아요."
지난달 27일 광주 동구의 한 편의점을 턴 13살 B 군. 경찰 앞에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 자신이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임을 잘 알고 있어서다.
B 군의 범행은 처음이 아니다. 최근 8개월 동안 절도 등의 범죄 경력이 무려 32건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동네 또래 형들과 슈퍼마켓에서 현금과 담배를 훔친 걸 시작으로 취객 지갑이나 주차된 차량을 털거나, 대리점 문을 벽돌로 깨부수고 들어가 2000만 원 상당의 최신 휴대폰 19대를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B 군은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여서 또다시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 성인 뺨치는 범죄 저질러도 처벌 대신 '보호처분'
현행법상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은 형법에 저촉되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촉법소년'으로 분류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선고할 수 없고 소년법상 보호처분만 가능하다.
하지만 범죄가 중한 경우에는 소년원에 송치할 수도 있다. 그나마 유일무이하게 강제력을 담보하는 처분이다.
지난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소년원에 송치된 초등학교 6학년생 3명이 그런 경우다. 이 아이들은 지적장애 2급인 20대 여성을 유인, 스마트폰에 저장된 '야동'을 보여주며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촉법소년들 대부분에겐 가벼운 처분 위주로 내려져 '솜방망이' 논란도 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절도 수준을 넘어 강도나 강간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3일 경찰청이 민주당 김현 의원에게 제출한 '2011~2012년 촉법소년 현황'에 따르면 강도·강간·방화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촉법소년은 해당 2년간 626명에 달했다.
특히 이 가운데 강간을 저지른 촉법소년의 비율은 58%인 363명이나 됐다.
절도와 폭력까지 합치면 해당 2년간 경찰 조사를 받은 촉법소년은 2만 2490명이나 된다. 2011년 9431명에서 2012년에는 1만 3059명으로 늘어나, 일년새 38.5%나 급증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3년 동안 서울 가정법원이 촉법소년에게 내린 보호처분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8%는 '부모나 친지가 관리하라'는 1호 처분이었다.
반면 소년원에 보내는 9, 10호 처분은 겨우 0.4%에 불과했다. 살인 등 극악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A 군의 경우처럼 소년원에는 2년까지만 보낼 수 있다.
◈ 형사처벌 못하다 보니…악용하는 재범 이상 늘어
이렇게 법망을 벗어나다 보니 촉법소년들의 재범률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2011년 같은 중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남학생 C군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경찰에 붙잡힌 C군은 형사처벌을 면했고, 범죄 사실을 자랑하고 다니다가 결국 같은 해 또다시 친구 6명과 함께 다른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했다.
당시 경찰은 C군이 이미 지난 2010년 당시 12세의 나이에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네 차례의 검거와 '보호처분'을 받고 풀려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소년범 가운데 3회 이상 보호처분에 처해지는 경우가 2009년 4390건, 2010년 4184건, 2011년 4220건으로 매년 4000건을 웃돈다.
최초 범행 당시에는 영상매체 등을 보다가 성폭행이나 집단폭행 등을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로 여겨 호기심에 따라해본 경우가 많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범죄가 반복되면서 갈수록 무감각해진다는 점이다.
서울 수서경찰서 문춘식 여성청소년과장은 "촉법소년들 대다수는 자신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수차례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잦다"면서 "범죄를 반복하고 경찰서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뉘우치는 기색도 없고 경찰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갈수록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아이들. 10년 또는 20년 뒤 이 사회의 주축이 될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http://news.nate.com/view/20130930n02579
②그들의 '학교'
학교는 '계급사회'…촉법소년은 '영웅' 취급... 가해자와 피해자 얽히기도
학교 폭력 사건에 자주 연루되어온 14살 A 군. 공부는 전교 꼴등 수준이었지만,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형을 따라 권투를 오래 배워 동네 중학생들에겐 ‘짱’으로 유명했다.
"중학교 1학년 됐는데 학교 애들이 너무 약해보여서요. 어디서 온 누가 세다고 하면 걔네 찾아가서 한번 싸우자 그러고.”
A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폭력위원회만 6차례 불려 나갔다가 결국 강제전학을 당했다. 이후 성폭행 사건에 휘말려 서울소년원에까지 오게 됐다.
◈학교는 ‘일진부터 왕따까지’ 계급사회
A 군은 “중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누가 센 애인지 알 수 있다”며 “딱 봐서 아는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초등학교에선 누가 센 애였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소년부 재판을 맡고 있는 박종택 부장판사는 “학기 초반 내부에서 결정된 일진부터 왕따까지의 계급 사회가 1년이 넘게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말처럼 요즘 학교는 ‘일진’부터 ‘왕따’까지, ‘모범생’에서 ‘꼴통’까지 정교하게 줄 세워진 서열 세계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찍힌’ 불량 학생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면 곤란하다. 촉법소년은 이 서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촉법소년은 때론 또래집단의 ‘영웅’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경찰 조사를 받거나 보호처분을 받은 경력은 또래에게 자신이 얼마나 ‘센’ 사람인지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자랑거리가 된다.
서울 강서구의 중학생 김모(15) 양은 “경찰서나 학교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혼나도 반성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며 “나 이렇게 센 애다, 건들지 마라 이런 식으로 느끼는 애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촉법소년들의 학교 폭력은 언어폭력이나 따돌림 정도를 넘어서며 어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 구로구에선 한 초등학교 5학년생은 같은 학교 동급생이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며 청소용 락스를 머리에 들이부었다.
지난 9월 인천에선 초등학교 6학년생들끼리 카카오톡으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칼을 들고 동급생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한들,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중학생의 81.1%가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어려지는 ‘학교폭력 가해자’…초등학교에도 만연한 ‘일진문화’
학교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은 ‘무서운 중2’보다 더 어려졌다. 실제로 가해 연령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추세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1996년 처음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할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 제일 많았다"며 "18년이 지난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으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초등학생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2010년에 비해 3.6배 증가한 2390명을 기록했다. 3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빈도도 중학생이 고등학생에 비해 확연히 높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중학생 6.1%가 1년에 한두 번은 집단 따돌림에 참여한다. 고등학생(2.3%)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학교에서 일진이나 빵셔틀 같은 '서열 문화'를 경험하는 나이도 예전보다 어려져 초등학생 고학년이면 이미 고착화된다.
학교폭력 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일진이 초등학교까지 내려가 애들끼리도 ‘쟤는 일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결국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부모한테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걔네(일진)가 무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장 체감 범죄연령 확실히 낮아져” vs "환경 고려가 우선“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현장에서 느끼는 건 범죄 연령이 확실히 어려지고 있으며 저연령화가 엄청나게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일률적으로 14세 미만이면 방화든 살인이든 형사적 저촉을 일체 안 받지만, 결국은 처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것.
조정실 회장도 “가해 학생이 강제전학을 가도 나머지 애들이 '너 때문에 가해학생이 전학 갔다'며 오히려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공격한다”며 “다른 아이 교육 차원에서도 반드시 처벌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학교폭력 사건은 오히려 ‘진짜’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택 판사는 “왕따를 당하던 피해자가 어느날 갑자기 볼펜으로 왕따를 시키던 아이를 홧김에 찌를 경우, 표면상의 ‘가해자’는 오히려 왕따 피해자”라며 “얘를 엄벌하면 그 처벌에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학교 폭력 문제에 접근하다 보면, 결국 드러나는 사건만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섣불리 나누는 피상적 대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상담교사 등의 충분한 인프라가 부족한 학교 현장에서, 교사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무작정 처벌로 일관하는 게 능사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종택 판사는 “학교에선 ‘너희는 우리반 점수 깎아먹는 아이들’, ‘나쁜 짓하는 애들’로 지목한다”며 “이런 아이들을 ‘면학 분위기 조성’이라는 수단으로 접근해 혼내다 보니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상처를 입고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청소년계 경찰은 그 지역사회에서 오래 근무하며 그 지역과 학교, 일진 계보를 꿰뚫고 있다”며 “처벌 위주가 아닌 문제 해결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ttp://news.nate.com/view/20131001n02483
③그들의 '비행'
전교회장도 '가출팸'…性매매까지 나선 까닭... 밤거리는 아이들의 '해방구'
눈을 떴다. 창문을 가려놓은 두터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시계를 본다. 아, 또 낮 2시다. 오늘도 학교 가기 미션은 실패구나.
A(16) 군의 하루는 보통 이렇게 오후 늦게야 시작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저녁 무렵부터 새벽 3~4시까지 동네 형들과 어울려 놀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기 싫은 건 아니다. 학교에 가면 오히려 친구들도 만나고 밥도 해결된다. 하지만 등교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눈 뜨고 문지방을 넘는데 30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대낮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학교를 빠지다보니 상습 결석생이 됐다. 결석에는 이제 무감각해졌다.
밖이 어둑어둑해지고 배가 슬슬 고파 올 저녁 시간. 지금쯤이면 늘 모이는 그 골목에 대여섯 명쯤 모여들 때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진짜 '하루'를 시작하러 나가본다.
◈어른들의 '퇴근' 시간이 학교 밖 아이들의 '출근' 시간
밤은 비행(非行)을 저지르는 촉법소년들이 자유롭게 비행(飛行)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다.
A 군이 '주면야행'(晝眠夜行) 생활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촉법소년 연령이었던 A 군은 동네 형들과 어울리는 데 맛을 들인 뒤 밤마다 PC방에 가거나 오토바이를 탔다. 하지만 놀자면 돈이 필요했다. 집에서 돈을 얻을 수 없으니 친구들에게 빼앗았다. 오토바이는 거의 훔쳤다.
그리고 5년여 흐른 지금, 촉법소년 나이를 넘겼음에도 이미 버릇처럼 당연해진 범죄로 인해 소년원을 들락거리게 됐다.
일찌감치 어른들의 관리망을 벗어나는 아이들은 가출과 탈(脫)학교를 겪으며 더 강도 높은 범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B(15) 군은 초등학생 시절 또래 친구들을 으슥한 곳으로 데려간 뒤 가위로 위협하며 "내 앞에서 성적인 행동을 해보라"고 강요했다. B 군이 또래 사이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사건은 유야무야 지나갔지만 나중에서야 소문이 돌았다.
전교회장까지 지냈다가 소위 '가출팸'에 들어가 성매매를 시작한 C 양도 당시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모범생이던 소녀는 또래 남학생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다가, 남학생이 소문을 내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가출했다.
경찰에 붙잡히거나 소년원에 다녀와도 다시 '가출팸'으로 돌아가는 게 아이들의 특징이란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어른들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주는 '가족'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영선 서울소년원장은 "가출팸이라는 단어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며 "말이 패밀리지, 결국 보도방이나 성매매업소를 미화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 아이들은 누가 관리하나…턱없이 부족한 인프라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일탈에 빠져든다. 하지만 제동을 걸어줄 주체는 모호하다.
교정하고 계도하려면 우선 이들에 대한 '접근'이 우선인데, 사실상 촉법 범죄가 발생하는 곳은 학교 담장 너머라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청소년 휴카페' 운영을 시작한 서울 중랑경찰서 이상인 경위는 매일 밤 중랑구 시내를 돈다. 자정쯤 역 주변 번화가에만 가봐도 매일 보이는 얼굴들이 떼지어 다니고 있어서다.
"이들 대부분이 학교를 빠지고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학교나 스쿨폴리스 차원의 대책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교육청 통계나 정책에 잡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경위는 "탈학교 가출 아이들을 수용하는 쉼터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제 발로 찾아오는 아이들에 한해서만 유용하다"고 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정책위원장도 "학교 밖의 아이들에게 접근할 전문기관은 지금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교육부나 잘 알려진 위센터, 청소년 수련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 등이 있긴 하지만 현재의 인프라만으로는 아이들을 교정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쉼터가 있다 해도 하드웨어적인 역할만 수행할 뿐, 전문성을 갖고 소프트웨어적인 역할을 다 하는 기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아…지속적 관심과 관리 필요
"촉법소년 등 저연령대에 범죄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성적으로 설득이 안 된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소년부 단독 서형주 판사는 "법정을 의식하지도 않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잘 모른다"고 촉법소년을 설명한다. "지난주에 법정에 왔던 아이가 또 나타나서 웃으며 인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죄의식이 부족하다보니 자연히 재범률은 높아진다. "소년부 송치 한두 번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게 저연령대 아이들"이어서다.
따라서 이들을 계도하려면 교사나 경찰 등의 공무원이 퇴근한 뒤에도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야간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아이들은 쉽사리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시적인 만남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소년 휴카페' 이상인 경위는 "지난 2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휴카페에서 만난 아이들 가운데 2명이 이번에 스마트폰 사용을 끊었다"고 말했다. 기계값과 요금을 훔치거나 뺏은 돈으로 충당하면서까지 스마트폰에 열광하던 아이들이었다.
이 경위는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로 여겼다"고 이를 반겼다. 2년여간 학교나 정부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가서 아이들과 접촉한 결과다.
청소년 범죄는 워낙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학교 독자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등이 모두 힘을 모아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10번 범죄를 저지르던 아이가 3번 범죄를 저지른다면 '개선'으로 봐야 하지만, 현재의 청소년 대책은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니 문제아"로 평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과에 대한 성급한 기대가 도리어 교정 가능한 아이들까지 망치고 있다는 얘기다.
http://news.nate.com/view/20131002n02459
④그들의 '가정'
'망치殺人' 열세 살 소년의 '스위치'... 부모 폭력과 사회 무관심이 비행 불러
서울소년원에 들어갈 때 내 나이는 13살이었다.
처음 해보는 단체생활에 첫날부터 실수투성이였다. 선생님들의 지적이 늘어나고 방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저녁이 되자 방에서 가장 덩치가 큰 18살 형이 내게 다가왔다. "너 내일 아침에 두고 보자". 바로 그때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소년원에 온 형들은 대부분 좀도둑질을 하거나 동네 애들 돈을 뺏은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망치로 사람을 때려 죽인 나 같은 아이는 처음부터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소년원에 들어오자마자 받은 심리검사 결과는 나에게 '스위치'가 있다고 했다. 먼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자극을 받아 '스위치'가 켜지면 충동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성격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날 밤도 나는 조용히 잠에서 깼다. 어쩌면 처음부터 잠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새벽 순찰을 돌던 선생님은 내가 자고 있던 형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나는 밤새도록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위아래로 흔들며 형의 눈을 찌르려는 또 다른 나를 붙잡고 있었다.
◈13살 아이를 살인범으로 만든 아버지의 한 마디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는 바람이 났다고 했다.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 혼자 있기 무서워 매달리는 나를 뿌리치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너 내가 다시 오면 두고 보자." 그때 내 나이는 7살이었다.
한 달 동안 집에 갇혀 혼자 지냈다. 먹을 거라고는 집에 남아있던 라면이 전부였지만 언제 아버지가 올지 몰라 아끼고 아껴 먹었다. 변기가 막히고 쓰레기가 쌓여가는 집에서 아무리 울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오지 않을까 겁이 났고 아버지가 돌아오면 다시 화를 낼까 또 겁이 났다.
내 몸이 반쪽으로 줄어들어 몸도 가누기 힘들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머니를 찾지 못한 아버지는 더 무서운 사람이 됐다. 그 아버지와 단둘이 6년을 보내고 13살이 됐을 때 난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난 15살, 복역기간을 마치고 소년원을 나간다. 그동안 정신치료를 받아서 이제는 "두고 보자"는 말을 들어도 '스위치'는 꺼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면 집에 갇혀 울던 7살 아이로 돌아갈 것 같아 겁이 난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비행의 원인은 언제나 가정… 주범은 무관심과 폭력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범죄의 늪에 빠진 촉법소년. 하지만 이들은 결코 타고난 '사이코패스'나 '괴물'이 아니라, 유년기에 돌봄의 손길이 부족했을 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망치 살인' 소년을 직접 지도한 서울소년원 한영선 원장은 "그 아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성을 보이거나 극단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촉법소년의 범행 뒤에는 무너진 가정과 폭력적인 양육환경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또래집단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중고등학생보다 나이가 어린 촉법소년에게는 가정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한세대학교 치료상담대학원 김희수 교수와 총신대학교 양혜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07년 '저소득 가정 아동 및 청소년의. 비행행동에 대한 환경적 요인의 영향구조 비교' 논문에서 "가족 관련 요인은 청소년보다는 아동에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무너진 가정'이란 게 반드시 부모가 없거나 한 명만 있는 경우를 뜻하지는 않는다. 특수절도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온 A(14) 군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을 뿐 아니라 3명의 여동생도 정성껏 돌보던 아이였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술과 담배를 배웠고 중학생이 되자 가출은 일상이 됐다. 용돈이 떨어지니 자연스레 동네 가게의 돈이나 스마트폰을 훔쳤다.
A군은 "학교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아버지가 제일 심하게 때리는 편이었다"고 털어놨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야구방망이로 맞다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A군이 유독 따랐던 어머니도 아들의 비행이 거듭되자 지쳐버렸다. A군은 "어머니로부터 '사고나 칠 바에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속이 편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가족의 면회는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털어놨다.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한부모가정의 아이들만이 비행을 저지른다는 고정관념은 편견에 불과하다. 가정 형태나 경제적 여건이 아니라, 보호자에게 관심 어린 손길을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부모 가정이 아니라도 맞벌이를 하는 등 가정에서 충분히 신경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비행을 저지르고 온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연락해도 '내 아이 아니다'라며 전화를 끊고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혀를 찼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09년 낸 '저연령 소년의 비행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서는 "부모의 폭력성이나 부모의 감독 등이 자녀의 비행에 중요한 요인"이라며 "가정 내 관계나 양육태도가 다른 가정 조건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령 비행소년 중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의 교육수준과 경제수준이 낮을 경우 비행이 약간 더 자주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
보고서는 오히려 "부모의 폭력성이 높거나 자녀와의 관계가 나쁠수록 자녀의 불량행위가 훨씬 잦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의 폭력성이 낮을 경우 40.1%의 아이들은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폭력성이 높은 집에서는 78.5%의 아이들이 비행을 저질렀다.
◈촉법소년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무관심'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촉법소년 범죄'를 막을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신경쓰지 못할 상황에 놓인 아이는 우리 모두가 거둬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보호관찰소 북부지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이웃집 아이는 어떻게 크는지 관심을 가졌는데, 지금은 핵가족만 남고 공동체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를 복지시스템이 챙기지 못한 채 부모에게만 양육을 떠맡기면서 과부하가 걸린 셈"이라는 것.
이 관계자는 "사회 공동체 모두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촉법소년을 바라봐주면 좋겠다"며 "비행은 결과일 뿐인데, 비행을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은 나 몰라라 한 채 아이들만 꾸짖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http://news.nate.com/view/20131003n02261
⑤그들의 '내일'
15살에 '전과 47범'…처벌만이 능사일까... 소년→성인 범죄자 고리 깨야
지난 4월 서울 강북경찰서는 공업용 본드를 흡입해 환각상태로 스마트폰을 훔친 가출청소년 5명을 붙잡아 4명을 입건하고, 촉법소년인 한 명을 소년분류심사원에 인계했다.
이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은 오모(15) 군은 무려 전과 47범이었다. 구속된 3명의 전과를 합치면 86건에 이를 정도였다.
오 군은 촉법소년일 당시 범행을 저질러 입소했던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새로운 범행 수법을 배운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 갈수록 높아지는 재범률, 결국 성인범죄자로 이어져
오 군의 사례는 촉법소년을 비롯한 소년범들의 범죄는 재범을 넘어 반복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통계개발원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2'에 수록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를 보면, 2001년 36.8%였던 소년범 재범자의 비율은 2011년 40.6%로 늘어났다. 특히 전과 2범 이상의 비율은 같은 기간 20.5%에서 25.5%였다.
이런 재범을 막지 못해 결국 소년범들은 성인범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로는, 소년범죄자가 성인범죄자로 이어지는 전이율이 무려 67%에 이른다.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어른이 되어서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얘기다.
◈ "촉법소년 연령 낮춰 성인범 전락 막자"
결국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 '범죄소년'(만 14세 이상 19세 미만) → '성인범'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게 급선무다.
이 고리를 깨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지만, 그 방법을 두고는 상반된 입장이 나타난다.
일단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 소년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박옥식 사무총장은 지난 5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4대 사회악 근절을 위한 경찰의 역할' 세미나에서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총장은 "독일 등 유럽에서는 소년범죄에 대해 불관용 엄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춰 재발하는 청소년 범죄를 국가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도 "오히려 피해 학생 인권은 없어도 가해 학생 인권은 있다"며 "가해자에겐 처벌이 있어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고 뜻을 같이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2008년 개정을 통해 소년법 적용 상한선을 만 20세 미만에서 19세 미만으로 낮췄고, 촉법소년의 범위도 12~13세에서 10~13세로 넓혔다.
◈ "연령 낮추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 형사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가 중단되진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환경적 범죄중단요인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소년원 한영선 원장은 "처벌 수위를 놓고 갑론을박하지만 중요한 건 미래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는 복지시스템으로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더 강한 처벌을 하라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살레시오청소년센터 백준식 센터장도 "중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거꾸로 말하면 심각한 상처를 받은 인간이란 의미"라며 "안락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들이 혜택을 받지 못해 비행에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년범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도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소년부 서형주 판사는 "법정에 오는 아이들은 본인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식을 하지 못한다"면서 "뉘우치는 아이들도 보통 재범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서 판사는 "소년범 대부분은 해체된 가정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면서 "처벌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범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 "범죄 중단할 수 있도록 근본 환경 개선 위한 사후 관리 필요"
이에 따라 촉법소년을 비롯한 소년범에 대해 형사처벌만이 아닌 사후 관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박종택 부장판사는 "벌을 달게 받는다면 효과가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며 "성장할수록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생겨 흉악범으로 전락한다"고 꼬집었다.
박 판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환경을 조정한다는 보호처분 목표가 필요하다"며 "아이만 처벌할 게 아니라 미국처럼 재판 과정에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해 환경 조정에 대한 검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청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표준 선도프로그램'은 이런 환경 조정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경찰청은 기존 소년범 선도프로그램에 정신의학적 진단을 보완한 '표준 선도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범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전평가 1시간 △소셜 액티비티 8시간 △재범방지 6시간 △사후평가 1시간으로 구성돼, 신경정신의학회 전문가가 직접 진행한다.
지난달 말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첫 예비검증을 시작, 오는 11월까지 전국 35개 지역에서 시행을 거친 뒤 최종 보완까지 마무리하게 된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민경화 경감은 "소년범들에 대한 단순 처벌을 넘어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사후 관리로서 선도프로그램을 정립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http://news.nate.com/view/20131004n0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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