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앞둔 홍명보호의 화두 중 하나는 바로 해외파/국내파 논란이다. 국내파 위주로 소화한 미주 전지훈련 이후 이들의 기량을 바라보는 평판이 매우 나빠지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이른바 ‘기성용 사태’를 통해 항간에 떠돌던 유럽파 선수들의 우월 의식이 일부 공개되어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그간 월드컵을 준비하던 한국 대표팀에 있어서는 낯선 풍경이다. 어느 한쪽의 우열보다도 단합을 중시했던 축구대표팀의 기조를 떠올린다면 지금의 현상은 분열에 가깝게 비친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달라졌다. 외부에서 들이대는 잣대도 그만큼 변해야 한다. 단순히 우열 혹은 주도권을 논하는 논쟁은 소모적일 뿐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유럽은 막연히 동경만 하던 무대도 아니다. 비단 유럽 뿐만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도 나가기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선수들의 마인드는 과거 선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은 물론이며 대한축구협회 역시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해외파, 얼마나 늘었나?
위 표는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다. 왠지 지금 발표되는 대표팀 명단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엔트리부터 살피자.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라는 대성공은 예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유럽파를 두루 탄생시켰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유럽에 뛰던 선수는 안정환과 설기현 단 두 선수에 불과했으나, 이때는 다섯 명까지 늘었다. 일본 등 타 아시아 국가에서 뛰는 선수를 다 합해도 7명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이보다 조금 더 늘었다. 수치적으로 볼 때 남아공 월드컵 당시 유럽파는 6명, 아시아 무대에서 뛰는 선수는 4명이었다. 최종 엔트리 23명 중 절반에 가까운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고 있었다.
해외파가 전술적으로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11명이 뛰는 팀 스포츠인 축구의 특성상 좋은 성적을 내면 국내파 선수들의 헌신과 보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국내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해외파들의 경험에 의지해야 했다. 지금처럼 선수 자원의 해외 진출(혹은 유출)이 심하지 않을때라 국내파에도 수준급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제법 많았다. 박지성같은 정신적 리더까지 있었던 당시 해외파와 국내파의 관계는 상호보완적 관계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홍명보호 출범 후 가장 풀전력에 가까웠다고 평가받았던 지난해 10월 브라질·말리전 당시 엔트리를 기준으로 삼겠다. 유럽파만 해도 9명이다. 여기에 아시아 무대에서 뛰는 선수도 5명이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30% 수준에 불과했던 해외파는 현재 56%에 달한다. 이중 아스날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박주영과 대표급으로 분류되는 남태희 등 몇몇 중동파 선수까지 포함한다면 비중은 더 크게 늘어난다. 말인즉슨, 이제는 이들만으로도 주전 라인업을 꾸려도 될 정도로 해외파가 무척 많아졌다는 뜻이다.
지금은 월드컵이 간절하지 않은 때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과거 이천수같은 선수들은 월드컵 출전을 무척이나 갈망했다. 심지어 부상을 숨기고서라도 월드컵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다. 이유가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제전을 몸소 경험하고 싶다는 선수 본연의 욕심도 있겠으나,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스카우트의 눈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검증받아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 싶다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국내파 선수들의 의욕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욕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표팀의 크나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2010 월드컵 최종 엔트리만 보더라도 이런 현상이 감지된다. 당시 막내로 엔트리에 승선한 기성용과 이청용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지 않고 유럽 무대로 직행한 거의 최초의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제 월드컵이 유럽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은 아닌 시대가 됐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아공 월드컵 후 대표팀 선발 여부를 떠나 유럽으로 진출한 선수를 세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가 됐다. 아시아권 팀으로 나가는 선수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발가락까지 모아도 힘든 수준이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인정받는다는 뜻이며,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만큼 텃밭인 K리그에는 대표팀 주전으로 나설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보기 힘들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연히 대표팀 구성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뀔 수밖에 없다. 대표팀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되는 게 기본 원칙이다. K리그 혹은 대표팀에서 뛰며 인정받은 활약상으로 해외 무대에서 뛰게 된 선수들이 많아진 지금, 해외파가 대표팀의 골격이자 주축이 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축구가 글로벌화되면서 국적에 관계없이 우수한 선수들은 여기저기서 부름을 받는 시대다. 이 때문에 재정, 리그 수준에 있어 최고 수준에 있는 독일,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몇몇 특정 국가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이 한국과 비슷한 실정이다. 언급한 이 축구 선진국도 선수들을 자국에 붙들어 맬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바뀐 패러다임, 국내파 향한 새로운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국내파들의 비중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처지다. 브라질처럼 전원 유럽파로 23명의 엔트리를 채울 만한 선수층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국내파들에 대한 의존도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외파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국내파들의 헌신이 뒤따라야만 팀이 잘 굴러갈 수 있다. 홍명보 감독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무용론’이 나온 미주 전지훈련이 결코 무용하지 않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하나를 놓치고 있다. 과거와 비슷한 잣대로 국내파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 헌신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희생에 가깝다. 과거에는 베스트 라인업의 절반 가량을 국내파가 차지했고, 당연히 감독은 물론이며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 잡겠다는 의욕이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벤치에 앉게 된 선수가 더 많아졌다. 선수들의 실망감은 매우 클 수밖에 없고, 이 선수들을 대표팀에 내보내는 K리그 클럽들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뛰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국내파에게 당근을 주는 법, 채찍을 가하는 법 모두 바뀔 필요가 있다. 현 상황을 이해를 바라야 하며,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살릴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달래야 한다. 이분화되어 있지만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이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공을 꿈꾸는 홍 감독은 물론이며 향후 누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더라도 이들에 대한 새로운 동기 부여 방책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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