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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는 창의성만 바란다 (1)

Flyturtle Studio 2012. 1. 2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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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스티브 잡스는 창의적 정신의 상징 인물이 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내게 창의성이 있다는 생각은 남들은 모두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과 동치이다. 앞 시대를 살다 간 수 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창의성만을 기대하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프로’는 먼저 수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수많았던 천재들의 업적을 일이년에 이해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학자 이인석

 

 

펜 끝으로 행성을 발견한 남자


00LeVerrier해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바깥쪽 궤도를 도는 행성이다. 얼음과 바위로 이뤄진 푸른빛의 이 행성은 그 색깔 때문에 바다의 신 넵튜누스의 이름이 붙었다. 태양으로부터 45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행성은 165년마다 공전을, 368일마다 자전을 한다. 지구에서 1년은 해왕성의 하루인 셈이다. 아득히 먼 거리에 있기에 해왕성은 지구에서 관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몇 번이나 이 행성을 보았지만, 멀리 떨어진 붙박이 별로만 여겼다.

 우주의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몸을 감추고 있던 해왕성은 어느 수학자의 펜 끝에서 비로소 발견되었다. 프랑스의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Urbain Le Verrier, 1811~1877)는 천왕성의 궤도에서 뉴턴 역학에 어긋난 점을 발견한다. 그는 천왕성 바깥에 다른 행성이 존재한다는 추측을 하고 그 궤도를 계산해낸다. 르베리에는 자신의 계산 결과를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 Johann Gottfried Galle, 1812~1910)에게 편지로 부쳤다. 1846년 9월 23일, 갈레는 르베리에가 예측한 그 행성을 관측한다. 이 발견은 르베리에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고, 그는 “펜 끝으로 행성을 발견한 남자”라 불리게 되었다.

해왕성 발견 몇 년 후, 르베리에는 또 다른 행성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이 아닌 가장 안쪽이었다. 천왕성의 궤도와 마찬가지로 수성의 궤도에도 똑같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르베리에는 이번에도 태양과 수성 사이에 또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금 성급하게도 그는 이 행성에 불의 신 불카누스의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아무리 하늘을 뒤져보아도 르베리에가 예측한 그 행성을 찾을 수 없었다. 불카누스를 보았다는 주장이 종종 나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르베리에는 죽을 때까지 불카누스의 존재를 믿었지만 결국 불카누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성의 이상한 움직임은 르베리에가 죽고 38년이 지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설명되었다. 불카누스는 없었다. 수성의 궤도가 뉴턴 역학에서 어긋난 것이 아니라, 뉴턴 역학이 수성의 궤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 왜 못 만드느냐?”


00apple2우리는 창의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창의성(creativity)은 19세기까지 거의 쓰이지 않던 말이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에서 ‘창의성’은 100만번에 한 번꼴로 나오는 단어였다. 같은 시기에 ‘성실(sincerity)’이라는 말은 ‘창의성’보다 800배나 자주 쓰였다. 21세기에 이르자 ‘창의성’이라는 말은 60년 전보다 1000배, ‘성실’보다도 3배는 자주 쓰인다.1)

창의성이란 새롭고 유용한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능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창의성’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그 이유로 그 사람이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뭔가 외국에서 만든 물건이 유행하기만 하면 “우리는 이런 것 왜 못 만드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창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매우 그럴 듯하다. 하지만 창의성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라는 뜻을 새겨본다면,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설명은 별로 설득력도 없다. 아이폰이 큰 인기를 끌자 어떤 사람들은 미국은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아이폰을 만들 수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미국 기업들 중에서도 아이폰에 비할만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하나도 없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무너진 노키아와 R I M은 교육 환경 좋기로 소문난 핀란드와 캐나다 회사다. 결국 결과에 원인을 끌어다 붙이는 것 뿐이다.

사실 아이폰을 만들어낸 애플도 한때는 8비트 개인용 컴퓨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가 IBM 호환 PC가 등장한 이후로는 오랫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던 회사다. 사람들은 그저 누가 성공하면 그제서야 창의적이라며 칭찬을 하고, 어쩌다 실패를 하면 모진 비난을 한다. 경영학자 필 로젠츠바이크(Phil Rosenzweig)는 똑같은 기업이 똑같은 리더십 아래서 똑같은 전략을 똑같이 실행하더라도 긴 시간 속에서 실적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기 마련인데, 단지 실적이 좋은 해에는 강력한 리더십과 훌륭한 전략을 잘 실행한 기업으로 칭찬을 받는 반면 실적이 나쁜 해에는 무능한 리더십과 나쁜 전략을 엉망진창으로 실행했다고 비난 받는다고 지적한다.2)

이러한 평가가 결코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르베리에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천왕성에 대한 르베리에의 예측과 불카누스에 대한 르베리에의 예측에는 사실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하지만 르베리에는 천왕성에 대해서는 옳았고 불카누스에 대해서는 틀렸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창의성의 조건


00creativity창의성이라는 개념에는 원래 결과론적인 측면이 있다. 비슷한 개념인 ‘지능’과 비교해보자. 지능은 복잡한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가 복잡하다’라는 것은 문제를 풀기 전에 이미 주어진 조건이다. 또, 지능이 높은 사람은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빠르게 다룰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능의 경우, 이것이 발휘되는 조건과 발휘되는 과정의 특징이 분명하다. 반면에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인데, ‘결과가 새롭다’라는 것은 문제를 풀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으로서 창의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지능의 경우처럼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할 문제의 조건이나 창의적인 사고 과정의 특징을 분명히 알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할 문제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문제가 있다. 잘 정의된 문제(well-defined problem)와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ill-defined problem)이다. 잘 정의된 문제란 조건과 목표, 그리고 문제를 풀어가는 각 단계가 명확히 주어진 문제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벽돌의 부피를 구하는 것은 잘 정의된 문제이지만, 벽돌로 할 수있는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하는 것은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이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잘 정의된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지능이고,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 때문에 지능과 달리 창의성은 측정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잘 정의된 문제는 답이 확실하기 때문에 잘 푼다, 못 푼다를 가리기가 쉽다. 그리고 지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구분하기도 비교적 간단하다. 잘 정의된 문제를 여러 가지 주고 잘 해결하는지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의 경우에는 이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는 생각하기에 따라 답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답이 더 좋은 답인지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창의성에 대한 평가는 주관이 크게 개입할 수 밖에 없다. 예술가나 과학자 중에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후세에야 재발견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생각을 품고 있으면


00questionmark사람들 사이의 창의성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풀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관찰할 수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그레이엄 왈라스(Graham Wallas, 1858~1932)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 때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했다.3) 그 첫 단계는 준비(preparation)이다. 준비 단계는 논리와 추론으로 답을 찾는다. 간단한 문제들은 이 단계에서 바로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나 잘 정의되었더라도 복잡한 문제의 경우에는 다음 단계인 부화(incubation)와 통찰(insight)로 이어진다. 마지막 단계는 확인(verification)으로서 말 그대로 찾아낸 답이 정말로 맞는 답인지 확인하는 단계다




그렇다면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풀 때 거쳐가기 마련인 부화와 통찰은 무엇일까? 우선 부화에 대해 알아보자. 제넷 실베이라(Jeanette Silveira)는 실험참여자들에게 ‘값싼 목걸이 문제(cheap-necklace problem)’라는 간단한 퍼즐을 주고 풀게 했다. 퍼즐의 내용은 이렇다. “3개의 고리로 이뤄진 사슬이 4개 있다(그림 왼쪽). 고리를 하나 푸는데 2센트, 채우는데 3센트가 든다. 15센트 안으로 4개의 사슬을 이어 12개의 고리로 만들어진 목걸이(그림 오른쪽)를 만들어라.”

실험참여자들은 30분 동안 이 문제를 풀었는데, 55%만 정답을 알아냈다. 다른 실험참여자들에게는 똑같이 30분을 주었지만 대신 중간에 휴식 시간을 두었다. 휴식 시간에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도록 다른 활동을 시켰다. 그런데 한 문제만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사람들보다 이렇게 중간에 다른 일을 한 사람들이 문제를 더 잘 풀었다. 게다가 다른 일을 한 시간이 길 수록 정답률은 더 높아졌다. 휴식 시간이 30분인 경우 정답률은 64%였는데, 4시간으로 늘리자 85%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안 풀리던 문제가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보면 풀리는 현상을 마치 새가 알을 오래 품고 있어야 새끼가 태어나는 듯하다고 해서 ‘부화’라고 한다. 시험을 볼 때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다른 문제를 먼저 푸는 편이 나은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부화 효과 때문에 더 잘 풀린다. 여담이지만 새가 알을 품는 것은 ‘포란(抱卵)’이고, ‘부화(孵化)’는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므로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오래동안 써서 굳어진 용어이므로 여기서는 부화라고 하자.


00incubation2어떤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 중에는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풀려고 시도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값싼 목걸이 문제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슬을 하나씩 이어서 목걸이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사슬을 하나 이을 때마다 고리를 한 번 풀고 채워야 하기 때문에 5센트가 들어서 네 사슬을 모두 이으려면 20센트가 든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값싼 목걸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런데 한참 동안 다른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잘못된 생각을 잊게 돼서 다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풀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 값싼 목걸이 문제의 경우 정답은 단순해서 힌트 하나만 주면 쉽게 풀 수 있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우연히 힌트가 될 만한 것을 보거나 들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이 문제가 떠올라서 짬짬이 생각을 해서 결과적으로는 더 오랫동안 생각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화는 어느 한 가지 원인이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기보다는 이런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부화 효과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든지 부화 효과를 높이는 데 두 가지 변수가 중요하다. 하나는 준비에 들인 노력이다. 어쨌든 처음에는 문제를 풀어보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나중에 다시 풀 때도 잘 풀릴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실베이라의 실험에서도 그랫듯이 오랫동안 다른 일을 하면 원래 문제를 다시 풀 때 풀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문제를 직접 풀려고 노력을 하든 아니면 풀지 않고 다른 일을 하든 시간을 많이 들일 수록 풀릴 가능성이 더 커지는 셈이다.

그건 그렇고 값싼 목걸이 문제의 답은 이렇다. 사슬 하나를 모두 풀어서 열린 고리 3개를 만든다. 여기까지 6센트가 든다. 그리고 이 고리들로 나머지 사슬 3개를 연결한다. 여기에 9센트가 들어서 모두 15센트로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 ( 2면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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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books.google.com/ngrams/graph?content=creativity%2Csincerity&year_start=1940&year_end=2008&corpus=0&smoothing=0
2) Rosenzweig, P. (2007). The Halo Effect. New York, NY: Free Press.
3) Wallas, G. (1926). The Art of Thought. New York, NY: Harcourt, B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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