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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직접 탄 기자, 불과 출발 20분 만에..

Flyturtle Studio 2012. 2. 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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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외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외면 받는 현실은 여전하다. 지난 10·26재보궐선거 때는 194개 투표소에 승강기가 없어 투표하려는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에는 저상버스 도입율 목표치를 낮춰(현재는 12%) 반발이 일기도 했다. 장애인 콜택시 수도 현재 1302대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등록된 장애인 수만 251만명(2011.12월 기준). 숫자로 본 것이 아닌, 이들이 실제로 겪는 현실은 어떨까. 지난 1월 20일 5시간 동안 본지 기자와 수습 기자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녀봤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협조로 수동 휠체어를 대여 받았다.

■ 11시 30분, 낮은 경사에도 휠체어는 '헉헉'

눈높이가 낮아지니 휠체어를 탔다는 실감이 났다. 방향 조절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마음처럼 앞으로 쉬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여 타는 연습을 한 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 봤다. 작은 경사엔 쉽게 기우뚱하고,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몸이 들썩거렸다.

난관은 내리막길에서 시작됐다. 낮은 경사에도 제멋대로 구르려는 휠체어를 꽉 잡아야 했다. 비슷한 언덕 몇 개를 지나고 나니 금세 진땀이 났다. 늘 다니던 언덕길은 휠체어에 오른 순간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평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표면이 매끄러운 길이 아닌 이상 휠체어를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오돌도돌한 보도블럭은 야속하기만 했다. 힘을 주어 밀자니 심하게 흔들렸고, 살살 밀자니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했다.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한겨울 추위도 잊은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휠체어에 오른 지 불과 20여분 만이었다. 일상에서 늘 다녔던 길을 다녔을 뿐인데..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 했다.

■ 12시 30분, '언덕' 위 머나먼 보쌈집

이리저리 다니다 금세 허기가 몰려와 근처의 밥집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멀리 보이는 보쌈집에 가기로 정하고나니 바퀴를 미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빨간색 음식점 간판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음식점 앞 계단을 뒤로하고 진입로를 찾았지만 이내 막막함에 온몸의 기운이 빠졌다. 가게 앞에는 거대한 '산' 하나가 버티고 있었다. 경사가 아주 가파른(평소라면 그렇게 생각치 못했을) 진입판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저걸 넘을 수 있을까 바라보다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살금살금 바퀴를 굴려 올라가려는 순간, 휠체어가 뒤로 고꾸라질듯 기울어졌다.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높은 곳을 향해 천천히 올라갈 때의 느낌이었다. 경사가 족히 '40도'는 되는 듯 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찾은 보쌈집 앞을 가로막고 있던 진입판. 없는 것보단 나았지만 올라가기엔 경사가 지나치게 가파랐다.
할 수 없이 곁을 졸졸 따라다니던 수습 후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후배는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동시에 기자도 바퀴를 굴리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자신만만하던 후배는 '영차' 소리를 생각보다 크게 내더니 이렇게 말한다. "선배, 이거 엄청 힘드네요." 혼자 왔다면 이 허울 좋은 경사진입턱을 넘을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보쌈은 포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식사를 마친 후 계산대에 서자 점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은 이에게 계산대는 상당히 높았다. 팔을 위로 뻗어 카드를 내밀고, 펜을 더듬어 싸인을 한 후 계산을 마쳤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에 맞춰져 있어요."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났던 김 모씨의 음성이 다시금 귓가를 울렸다.

■ 1시 20분, 30분 만에 겨우 '저상버스'를 타고..

사전 취재 때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 확인차 천호역에 있는 'ㄹ시네마'에 향했다. 이동수단은 '버스'로 정했다.

버스 노선 안내판 옆에 휠체어를 세우고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는지 바라봤, 아니 올려다 봤다. 고개를 꽤 젖혀야 했다. 버스 번호를 확인하는 잠깐 동안 고개가 아파와 뒷목을 주물렀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익숙했던 버스 안내판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니 높기만 해 ,금세 뒷 목이 아파왔다.
예상했던 대로 운행하는 버스 대부분이 '계단 진입식'이라 여러대가 떠나는 것을 하릴없이 우두커니 바라봐야 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10분, 20분,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한기가 제법 차오를 무렵, 진입턱이 낮은 파란색 340번 저상버스가 다가왔다.

턱은 낮지만 어떻게 버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 될 무렵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로 타세요." 뒷 문으로 이동하자 평소 보이지 않던, 진입 보조철판이 앞으로 스르륵 빠져나왔다.



저상버스 뒷문에 달린 '휠체어용 진입판'. 개선된 부분이지만 아직까지 이런 '저상버스'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버스를 타고 한숨이 나가려고 할 무렵, 기사님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손잡이 꽉 잡으세요." 속으로 '브레이크 걸어놨으니 걱정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출발하자마자 휠체어가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불안함에 다시 후배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꽉 잡아."



건넌 후에도 늘 남아 있던 횡단보도의 '녹색막대'는 휠체어로 무사히 건너기엔 짧아 보였다.
정거장에 내려 ㄹ영화관으로 가기 위해 기다란 횡단보도 앞에 섰다. 파란불이 켜지고 재빨리 휠체어를 굴렸다.

역삼각형 초록 막대가 하나씩 떨어지고 사람들과의 간격은 벌어지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초록 막대가 떨어지고 빨간불로 바뀌었지만 휠체어는 여전히 횡단보도 위에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촉박했다.

■ 2시 20분, 영화관의 휠체어 지정석은 '맨 뒷 자리'

영화관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휠체어를 움직여 들어가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무섭게 닫혔다. 5초나 됐을까, 문이 닫히는 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다.

ㄹ영화관 직원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혹시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던 터라 적잖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영화관 안에 들어서는 순간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휠체어 좌석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저 맨 뒷 줄에 놓인 이동식 의자를 치우고 휠체어를 세워 영화를 보게 돼 있을 뿐이었다.




ㄹ영화관 맨 뒷 줄의 휠체어 배려석.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닌,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그 자리에 휠체어를 대는 방식이다.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맨 뒷 줄, 가운데가 휠체어를 탄 이들을 위한 '고정 좌석'이었다. 후배 녀석도 덩달아 맨 뒤에서 영화를 봐야했다. 평소 즐겨보던 가운데 줄의 중간 좌석은 도저히 갈 수 없는, 까마득히 먼 곳으로 느껴졌다.

다른 곳으로 또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영화 시작 전 밖으로 나왔다. 생리현상이 급해 바쁘게 바퀴를 굴려 도착한 화장실은 장애인용이 아니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어쩔 수 없이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휠체어가 체험이 아니라 정말 탈 수 밖에 없었다면..'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 3시, "마트로 가는 엘리베이터요? 없어요."

ㄹ영화관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ㅇ마트로 가 장을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간 다음 마트와 연결된 통로로 향했다. 마트로 가는 지하철 승객들로 통로는 북적였다.

하지만 휠체어를 위한 길은 그곳에 없었다. 중간에는 계단이, 좌우로는 각각 상·하향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안내원 분께 마트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없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승객들이 마트로 곧장 올 수 있도록 만든 통로.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뿐인 그곳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마트를 코 앞에 두고 그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니 막막했다. 2~3배 정도 돌아가는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졌던 것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배려하지 못한 누군가와의 '심리적 거리'였다.

마트 내에선 엘리베이터를 통해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다. 통로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시민들은 길을 터주는 등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혹시나 마트에서 지하철로 나가는 통로는 있을까 싶어 찾아가봤지만, 지하철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계단' 뿐이라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마트에서 나가는 문을 열려 애쓰고 있을 때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한 점원이었다. 마트로 들어오던 손님 한 분이 보다 못해 이렇게 외쳤다. "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요."

■ 4시, 커피숍 앞엔 '승용차'가, 편의점 앞엔 '의자더미'가..

커피 한 잔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ㅅ커피전문점으로 가는 길, 예상치 못한 방해물이 앞을 또 가로 막았다. 가게로 들어가는 경사통로 입구를 승용차 한 대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자동차를 밀고 난 후에야 커피를 마시러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엔 문제 없다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갈 당시 지나갔던 ㅅ편의점 한 곳도 다시금 생각났다. 입구에는 간이 플라스틱 의자가 잔뜩 쌓여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휠체어 진입로 앞에 놓여있던 '장애물'들. 커피전문점 앞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좌)와 편의점 앞에 쌓여있던 간이의자들.
휠체어 진입로가 아예 없는 곳도 부지기수였다. 건물들을 지나치며 "여긴 못 가겠다. 여기도. 여기도."하며 확인했다. 계단이 유일한 입구거나, 엘리베이터 없이 지하로 뚫려 있는 가게들이었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다니기엔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해 보였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에야 한숨이 나갔다. 가까운 이동 통로를 코 앞에 놔두고 대부분 멀리 돌아가야 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단 하루가 아닌, 매일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평소 "왜 장애인은 주위에 보이지 않을까" 품었던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 4시 30분, 지하철 '틈새'에 낀 휠체어 바퀴

빌렸던 휠체어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복지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내려와 휠체어용 탑승구에서 기다렸다. 당장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꽤 넓었던 것 같은데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을까." 후배의 도움을 받아 타보기로 했다.

탑승 때와 달리 내릴 때는 지하철과 승강장 틈새가 메워져 있었다. 이런 '작은 배려'는 이동하는데 큰 힘이 된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탑승을 시도했다. 통과했나 싶은 순간,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휠체어를 살짝 든 후 앞바퀴를 지하철에 먼저 넣어 통과해야 하는데 앞바퀴가 그만 틈새에 낀 것이다. 출입문을 닫겠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자 문에 끼일까 걱정이 앞섰다.

어쩔줄 몰라 하던 순간 승객 한 분이 휠체어 앞 바퀴를 들어 주셔서 가까스로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휠체어를 한쪽에 세워놓고 나니 '괜찮냐'는 승객들의 무언의 시선이 느껴졌다.

■ 5시, "장애인들은 한 군데 모아놓고 그냥.."

돌아온 복지관에서 만난 1급 장애인 안 모씨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꼼짝 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며 '장애인 이동권'의 현 주소에 대해 들려줬다.

안 씨는 "돌아다녀보면 언덕이나 턱이 많아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대중교통은 혼자 탈 엄두도 못 내고, 일반택시는 탈 수도 없을 뿐더러 기다려도 그냥 지나가버린다"고 토로했다.

문화 생활에 대해서도 "ㅆ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는데 휠체어 좌석이 아예 없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면서 기자가 체험했다며 공감하자 "체험으로 다 알기 힘들 정도로 배려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반납한 뒤 많은 상념을 안고 돌아오는 길, 안 씨가 건넨 마지막 한 마디가 내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언젠가 공단 직원이 장애 등급 확인차 나온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고. 차라리 장애인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그냥 '존엄사'를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출처 : http://news.nate.com/view/20120215n19185?pcvi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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