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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취업난 속에 비어있는 일자리. 이 모순이 '대한민국 고용카스트' 기획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30년 만에 최악의 청년 고용률. IMF외환위기 때도 4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던 청년 고용률이 올 봄 38.7%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빈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더니 지난 3월에 18만 개가 넘었습니다.
단순히 대졸자가 너무 많아졌다고, 그래서 대학 나온 청년들이 눈높이가 높아서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그런다고, 그렇게 이해해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이 자기 분수에 맞춰 눈을 낮추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일단 청년 구직자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들어봤습니다. “하청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원청 대기업으로 못 올라간다”, “비정규직 경력은 인정도 못 받는다”, “너는 후회말고 꼭 대기업을 가라”... 눈을 낮춰 들어갔다 낭패를 본 선배와 동기들의 뼈아픈 조언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제는 대학생 4명 중 1명은 부모님이 더 중소기업 취업을 말린다고 하니, 일자리의 급이 사회적 신분을 만들어낸다는 인식은 이제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같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10년 뒤 연봉이 15%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임금의 차이는 결혼, 대출, 주택, 그리고 자녀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을 다니더라도 성실히 일해서 인정받으면 대기업에 올라갈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고용카스트 3편에서 언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주변부 노동시장에서 중심부로 진입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주변부 일자리로 진입하면 거의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 우리는 이것을 인도의 엄격한 신분제인 '카스트'에 빗대 ‘고용 카스트’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고용카스트 3편을 통해 고용카스트가 생겨난 원인을 살펴봤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집약으로 전환해 고용 없는 성장을 하는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 그리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예속돼 스스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대-중소기업 양극화... 고용카스트는 우리 경제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 눈높이 높다고? 청년들은 쉴새 없이 일한다
어떻든 고용카스트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전체의 20%도 안 되는 대기업과 정부, 공공기관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질 나쁜 일자리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처절한 경쟁을 벌입니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마냥 눈높이를 내세울 수만은 없습니다. 은퇴를 하셨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로서 부모님에게 언제까지 짐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가정불화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실상 청년들은 쉴새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품어줄 수 있는 청년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렇다고 마냥 취업준비를 할 안전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알바를 하고, 또 대부분은 졸업 6개월 안에 취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후 직장을 옮겨 다니는 비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당장 부모님의 부담을 덜고 독립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 쫓겨 눈높이를 낮춰 들어갔다가 열악한 환경에, 임금 체불에 각종 문제로 질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되는 겁니다.
고용카스트 2편에 등장했던, 서울 4년제 대학 법대까지 나왔지만 중도에 사법시험을 접고 맨몸으로 취업 경쟁에 나섰다는 윤 모씨(32)의 말은 그래서 참 슬펐습니다.
“당장 필요한 일을 하려고 눈 낮출 수밖에 없었어요. 한계까지 낮췄는데도 갈 수 있는데는 별로 없더라고요. 근로시간이나 조건도 따지지 않았고 금액으로 보면 100만원만 넘으면 된다고...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에게 한단계 일자리 급을 올릴 수 있는 사다리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경제적 부담에 쫓겨 고용카스트의 장벽을 알고서도 결국 눈높이를 낮춥니다. 생계만 이어나갈 임금을 받고 취업하고 있습니다.
◈ "눈 낮춰 돈벌라고 보냈는데..내 새끼가 죽어왔다"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청년 노동자가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희생되는 경우도 점점 많아집니다. 노동전문가인 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이야기입니다.
“구미 불산누출 사고로 5명이 죽었죠. 가장 어린사람이 22살이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와서 뭐 관리하는지 뭐 다루는지도 모르는데, 그 부모가 인터뷰 때 그러시더라고요. '애한테 눈 낮춰서 돈 벌라고 해서 보냈는데 내 새끼가 죽어왔다'. 울면서 얘기하는데...이게 현실 아니에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새벽에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아르곤 가스 질식으로 사망한 하청업체 노동자 중에는 25살 청년이 끼어 있었습니다. 최근 빈발하는 산업재해 현장에서 청년 희생자를 발견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년들의 눈높이만 탓하고, 스펙 쌓기 열풍만 탓해서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가 내놓은 단편적인 청년 고용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사실 청년 구직자는 미숙련 노동자로 편입되는 노동시장의 최약자입니다.
고용카스트 2편에 나왔던 김모(32)씨는 “취업준비 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회사의 선택에 자신을 내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간택에 목을 매고 있는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란 참 어렵습니다. 고용카스트를 비롯해 청년 실업에 있어서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부족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많이 부족했습니다. 일자리 피라미드의 중상층부를 차지한 기자 2명이 고용카스트 현상의 전모를 밝히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전문가들 앞에서 해법을 찾아내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그러나 실체를 인식하면 해법은 찾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포털 검색창 자동완성 기능에'고용카스트'라는 용어가 생긴 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다고 봅니다.
CBS노컷뉴스는 고용카스트 기획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속으로만 삭여왔던 청년 구직자들의 고통을 생생히 바라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청년들의 숨죽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알려나갈 것입니다.
hahoi@cbs.co.kr
http://news.nate.com/view/20130511n01872?pcvi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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