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시와 보호 사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167398
“아이 보호하고 싶은데... 아빠의 감시라네요”
육아ㆍ교육에 관심 많은 40대 아빠들
자녀는 디지털기기 익숙한 ‘新인류’
SNS 유해성에 놀라 끙끙 앓고
화장하는 초등생 딸과 다투기도
‘내 아버지와 다른 아빠’ 되기 고민
“아빠 언제 와?” 집에 가니 아이는 또 잠들었다. 오늘도 전화 통화로 아이 목소리만 들었다.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라는 ‘프렌디’가 신조어에 이름을 올렸다지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내겐 딴 나라 얘기다. 오전 9시~오후 6시 일과는 그저 원칙일 뿐이다. 아이와 1시간 놀아주면 운수 좋은 날이다. 집에선 누워만 지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다른 아빠로 살겠노라 다짐했건만 어떤 아빠가 돼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누군들 ‘추아빠(추성훈)’처럼 폼 나는 아빠가 되기 싫을까. (서울 사는 40세 맞벌이 아빠 A씨)
A씨는 사실 가상의 아빠다. 지난해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30~40대 맞벌이 남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오늘날 평균 아빠의 모습을 꾸몄다.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노동 9시간, 매주 야근 2회 및 회식 1회, 자녀 만남 하루 1시간19분이 평균 아빠들의 시간이다.
맞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선택이든, 가정을 우선하는 새로운 가치관 때문이든 육아에 적극 나서는 아빠들, 프렌디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아빠들은 자녀, 일, 아내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장벽에 부딪친다. 무엇보다 군 복무 경험과 상하관계가 뚜렷한 직장 등 규율이 지배하는 남성문화에 익숙한 아빠들은 디지털기기 사용에 능숙하고 자의식이 조숙한 신(新)인류 자녀들을 대하다 보면 가장 먼저 어느 선까지가 보호이고, 어디서부터 감시인지 헷갈린다.
“SNS 그냥 놔둬도 될까요?” 자영업자 곽모(43)씨
평범한 딸 바보 아빠다. 생업에 여념 없어 아내에게 육아를 상당 부분 맡기고는 있다. 그래도 주말마다 일부러 시간 내 가족과 여행을 떠날 만큼 자녀 사랑이 극진하다고 자부한다. 공부보다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에 몰두하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밉기는커녕 깜찍하고 귀여워 최근엔 나도 계정을 만들었다. 딸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나를 딸도 좋아라 했다.
여느 때처럼 페이스북을 둘러보던 지난 달, 딸이 친구와 함께 찍어 올린 사진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란 댓글이 달린 걸 발견하고 나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놀란 마음에 경찰에 신고했더니 “페이스북은 외국 회사라 수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위험한 물가엔 자녀를 내놓고 싶지 않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은 아빠 마음이다. 하고 싶은 건 모두 해주고 싶었던 아빠 철학을 비로소 돌아봤다.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10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금지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막는 게 능사 아니라지만” 중견기업 차장 박모(45)씨
나 역시 주말마다 딸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고, 어린 딸도 곧잘 따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이 화장을 시작하면서 아빠 역할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입술에 틴트를 바르기 시작한 딸에게 절대 바르면 안 된다고 윽박지른 게 화근이었다. 간섭하지 말라는 예상치 못한 반발이 되돌아왔다. 화장이 곧 일탈인 시대를 살았던 나, 자녀 일탈을 막는 게 아빠가 응당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상황이 심각해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까지 방문했다. “자의식이 강한 요즘 아이들은 못 하게 하면 일부러 더 하고 부모와 사이만 틀어진다”는 조언을 받고 나서 어렵게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딸의 손을 붙잡고 직접 화장품을 사주러 백화점에 간다. 사춘기 딸 마음 다칠까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지만 솔직히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불안하다.
“휴대폰 감시가 사생활 침해라니” 대기업 부장 전모(43)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틈틈이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휴대폰에는 딸을 보호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앱)이 깔려 있다. 휴대폰을 원격 조정하는 것은 물론, 전원을 끌 수도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암호를 걸 수도 있다. 동영상과 메신저 사용 시간은 내가 지정하고, 메신저에 불건전한 단어가 포함 돼 있는지 실시간 검색한다.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맞벌이라 돌보미에게 하교를 맡겼다가 길에서 잃어버릴 뻔 한 뒤 일찌감치 휴대폰을 사줬다. 몇 시간씩 휴대폰 게임과 유튜브 영상에 몰두하는 딸이 어린 나이에 이상한 영상을 접하면 어떡하나 덜컥 겁부터 났다. 마침 자녀 휴대폰 사용을 규제할 수 있는 앱이 출시돼 이거다 싶었다.
더 큰 문제는 7살짜리 유치원생 아들이다. 남자 아이들은 나쁜 말을 더 쉽게 배운다. 집에 놓고 다니는 아이패드로 최근 ‘유치원 대통령’으로 떠오른 한 BJ 영상을 수시로 보는가 싶더니 어디서 배워 와 내게 “뒷통수 치지 말라”는 말을 해 기함했다. 아이패드는 감시 앱도 깔지 못해 서류 가방에 아이패드를 숨겨 출근한 적도 있다.
물론 아이들은 나를 볼 때마다 볼멘 소리다. 다 너희들 위한 거라는 말로 밀어 붙였지만 사생활 침해라고 투덜거리는 딸, 친구들 다 보는데 왜 내게만 그러냐고 성화인 아들의 투정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 나의 관심과 보호가 지나친 건 아닐까.
직장에 치이고, 가정에서 공전(空轉)하는 평범한 요즘 아빠들이 털어놓은 각기 다른 속내에 대해 송해덕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빠도 자녀 돌봄에 반드시 참여해야 되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작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세밀하게 지켜볼 절대적 시간은 여전히 부족한 과도기 상황에 아빠들이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화 시대 통용되던 엄격한 아버지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아버지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어려움이 요즘 아빠들 고민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아빠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 일과 가정 사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167623
휴일에 겨우 짬내 아이랑 외출했더니…“홀아비?” 따가운 시선
근로자 노동시간 OECD 2위
낡은 조직문화로 야근 당연시
아빠들 “애들과 보낼 시간 부족”
수유실은 남성 출입금지 곤혹
교사들도 아빠와 상담하기 꺼려
백수처럼 안 보이려 옷 신경도
“육아는 여성 책임” 편견이 남성들 육아참여까지 제한
당신 주위에는 ‘친구 같은 아빠’가 몇 명이나 있는가. 이들이 최근 몇 년 새 가장 이상적인 아빠상으로 자리잡았지만 막상 찾아보면 흔치 않다. 오히려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주부, 똑같이 일하면서 육아는 왜 늘 내 몫이냐고 언성을 높이는 워킹맘들만 도처에 넘쳐난다. 육아와 교육에 참여하고 싶지만 일과 사회인식이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 가로막힌 아빠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아빠의 ‘시간빈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A(46)씨.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회사에서 해결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9시30분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9)과 유치원생 딸(6)은 잠들어있다. 몇 년 전 정부 주도로 시작된 매주 수요일 ‘가정의날’엔 회사도 정시 퇴근을 권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직원들만 가능할 뿐 과장인 A씨는 수요일에도 예외가 없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A씨와 반대로 아이들은 아빠의 부재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녁에 전화해 “언제 오냐”고 독촉하던 아들은 올해부턴 전화가 뜸하다. A씨는 “애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바빠서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은 없는, 일종의 시간빈곤에 허덕이는 것이다.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 ‘프렌디’를 꿈꾸는 아빠들은 대개 고질적인 장시간근로라는 거대한 장벽과 맞닥뜨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34개 OECD 국가 평균(1,766시간)보다는 347시간이나 많은 것으로, 하루 8시간 한 달 22일 근무할 경우, OECD 평균보다 두 달이나 더 일하고 있다. 저임금 근로자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고임금 근로자는 ‘야근=성실함’이라는 조직문화 때문에 대부분의 근로자가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박한 꿈조차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A씨는 “퇴근 시간이 당겨진다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잠들고 싶다”고 했다.
흔치 않은 결정을 한 아빠도 있다. 20대부터 교육 관련 기업에서 일해온 배정인(40)씨는 2년 전 교육시민단체로 직장을 옮겼다. 가깝게 지내던 회사 임원이 야근과 회식으로 가족에게 소홀해져 이혼위기까지 몰리자 가족을 호주로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다. “떨어져 살면 신경은 못 쓰지만 돈 보내주면 좋은 아빠 역할 반쪽은 할 수 있다”던 그 선배를 보며 돈 잘 버는 아빠, 좋은 아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배씨는 직업을 바꾼 후 월급이 반토막 났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얻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딸(8)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육비 등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배씨는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다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건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백수? 홀아비?
아빠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건 회사 밖에도 수두룩하다. 전남대 연구원인 정대근(38)씨는 아내 출근 후 막내 딸(6)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초등학교 3학년 아들(9)의 이번 학기 학부모 상담도 갔다. 정씨는 “아침 출근 시간 이후에 아이와 돌아다니면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며 “교사조차 아빠가 학교 상담에 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남성 출입금지 수유실부터 엄마 없이 자녀와 외출한 아빠에게 향하는 ‘홀아비인가, 백수인가’하는 곁눈질까지. 프렌디 시대에도 여전히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낡은 관념이 사회 구석구석, 그리고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고2, 중1 두 자녀 육아에 적극 참여해 온 문화평론가 정덕현(47)씨는 아내 없이 자녀들과 외출할 일이 생기면 옷을 일부러 더 잘 차려 입고 나간다. ‘백수’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아빠 육아는 노동보다 아빠들을 바라보는 편견이 더 힘들다”며 “육아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남성이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육아는 여성이 주책임자라는 편견이 여성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남성의 육아 참여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한 부모 역할에 대한 인식 정립이 시급하다”며 “모든 근로자가 아플 때 병가를 가는 것처럼 모든 남녀 근로자가 근로생애의 일정 기간은 반드시 부모 역할을 하는 시기라는 것을 기업과 사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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