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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 놈만 패" 한일전에서 미우라 지워버린 최영일의 '그림자 수비' 어땠길래?

Flyturtle Studio 2021. 1. 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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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일과 미우라의 편지]

* 이 편지는 일본 스포츠 전문 잡지인 Number가 기획한 것으로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 및 유명 선수들이 미우라 카즈에게 편지를 보내면 카즈가 답장하는 식으로 연재되는 코너

 

 


<최영일의 편지>

친애하는 가즈에게. 

안녕하시오.
나는 2000년에 은퇴를 한 후 지금은 부산에 있는 대학의 축구부 감독을 하고 있소. 얼마 전, 한국 T.V 프로에서 자네를 봤네. 일본 방송을 보여준 것 같은데 자네가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걸 그 방송 보고 알았다네. 자네 보다 내가 한 살 위이긴 하지만 같은 세대 선수로서 현역생활을 계속 한다는 거에 경의를 표하고 싶네.몸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텐데? 우리 세대를 대표해서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네.

오랜 세월 한국 대표팀 수비수로서 플레이 해 온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역시 가즈 자네일세.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 처음으로 내가 자네를 마크했지. 그 당시의 한일전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지.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도 있었고, 97년에는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같은 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절대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네. 

그 때 자네에 대해서는 유독 심한 마크를 했었는데.... 그것은 나도 인정 한다네. 일본에서는 나의 플레이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 같더군. 당시 한국 대표는 자네의 플레이를 연구 했다네. 테크닉, 운동량, 골 결정력, 승부에 대한 집념 등...그 와중에 자네가 몸 부디끼는 거를 조금 회피하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네. 그래서 내가 자네를 마크하게 된 걸세.

자네를 마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네. 몸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지. 축구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 이기는 거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치열한 게임이었더라도 게임 후에는 서로 악수를 교환하고, 라커룸으로 들어 올 때는 서로를 격려했지. 사나이끼리의 결투였기 때문에 나는 매우 기뻤다네. 90분간 나는 항상 자네 옆에 있었던 관계로 당연히 종료 휘슬이 울릴 때도 자네 옆에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우선 가까이 있는 선수와 악수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때 도쿄에서 우리 한국이 일본을 이긴 시합이라네. 그 게임에서 자네의 몸상태가 조금 안좋게 보였다네. 보통 때 보다 몸 부디 끼는 거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공중전에서도 거의 나한테 졌고...

자네가 프랑스 월드컵에 못나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네. 나에게 있어서는 쇼크였네.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본선에 진출한 것인데... 
자네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설 자격이 충분히 있는 선수라고 나는 생각하오.

언젠가 다시 자네와 만나고 싶소.
홈앤드 어웨이로 두 번 만나는 게 어떻겠나? 아무튼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다네. 그리고 다시 한번 축구를 하고 싶구만!

나는 동네 축구에서는 스트라이커라네. 왜냐하면? 수비수로서 할 것은 다 해봤기 때문이지.
그러나 자네와 함께 그라운드에 서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기쁜 마음으로 자네를 마크하게 될걸세.



<카즈의 편지> 

[최영일과의 싸움은 나의 재산이 됐다.]

지금까지 만나본 수비수 중에 최영일 만큼 나에게 ‘집중’ 했던 수비수는 없다. 처음 최영일과 만난 것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인데 그 게임에서 내가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결국 3대2로
한국에게 역전패를 했다. 당시 그 게임 후반부터 최영일이 나와 서 나를 마크한 것으로 기억된다.

최영일은 볼이 없는 곳에서도 내 유니폼을 잡아 당겼고, 팔꿈치로 치고, 손으로 잡고, 또한 말로서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욕 같은 걸 하면서 나를 거칠게 다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게임 이후, 日韓戰!
게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또 쟤야!‘ 하는 순간 어느새 벌써 사각형 얼굴의 선수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이었다.  위의 편지에 쓰여져 있는대로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쭉 최영
일과 나는 함께였다.

한국에서는 최영일을 ‘미우라의 그림자' 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진짜 그림자였다.

아무튼 19년 동안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심한 맨투맨 마크를 당해본 것은 예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오로지 최영일 뿐이었다. 브라질, 이태리 수비수들도 1대1 마크가 대단히 강력하다고 정평이 나있지만 최영일 같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경우는 없다.

당시의 日韓戰은 그 정도로 특별한 것이었다. 서로 자신의 국가 대표로서 중압감도 있었고, 책임감도 있었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일본의 에이스로서 골을 터뜨릴 사명이 있었고, 최영일은
나를 막는 것이 지상명령이었을테니까.....

실례되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최영일의 수비는 매우 교활하고 지저분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 근성은 대단했고 또한 존경할 만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게임이 끝나면 언제나 악수를 교환했다. 서로 국가를 대표해서 싸우는 것이니 만큼 이에 관해서는 서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스 월드컵 예선 도쿄에서의 시합은 일본으로서는 너무도 충격적인 패배였기 때문에 정신이 멍해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악수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최영일에게 마크를 당하면서 플레이 하는 게 무척 어려웠지만 한국이 그 정도로 나를 경계해서 최영일 같은 악착같은 수비수를 내보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쁜 일이기도 했다.
최영일의 마크를 어떻게 뚫고 득점을 올릴까 생각하는 것도 흥미로왔고, 그로 하여금 투지를 불태울 수 있게 되서도 좋았다.

지금까지 여러 선수와 몸을 부디끼며 축구를 해 왔는데, 최영일과 만나면 팀과는 별개로 단 둘이 승부를 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귀중한 순간이었고, 이러한 만남은 축구 선수로서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J-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그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 일본 선수가 플레이 하는 것도, 일본에서 한국 선수가 플레이 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뛰던 10여년 전과는日韓 관계가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日韓戰에서 최영일이 보여준 축구 선수로서의 ‘혼(魂)’은 시대가 바뀌더라도 계승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일이 지도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나 역시 최영일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그 때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엔죠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서로 지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또다시 티격태격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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