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는 우리 사회의 가려진 폭력이다. 단순히 패륜 자식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견고한 성(城)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학대 피해 노인들은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하고 있고, 상황이 심각해 형사처벌이 진행되도 노인들은 결국 자식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마련이다. 15일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노인학대 문제를 짚어본다.
[[학대받는 노인들①]성관계 요구에 사기, 폭행까지…노인 10% "피학대 경험"]
15일 노인학대인식의 날을 맞았지만 노인학대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1 "내가 싫다고 하니까 아들이 나를 때렸어."
지난 14일 찾은 인천의 한 학대피해노인쉼터. 이곳에서 거동이 불편한 둘째 아들과 함께 살다가 도망쳐 나온 박귀남 할머니(89·여·가명)를 만났다. 박 할머니는 지난달 평생을 살던 집에서 나와 쉼터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나이가 일흔이 다 된 아들은 '여자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범하려 했다. 박 할머니가 거부하니 아들은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할머니는 갈비뼈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이곳에 왔다.
봇짐장사로 네 자녀를 키워낸 고된 삶이었다. 특히 말썽을 멈추지 않아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며 키운 둘째 아들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자식들은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왔고 할머니에게 용돈도 매달 보냈다.
다른 자식들은 박 할머니가 이렇게 살고 있는 줄 몰랐다. 박 할머니 스스로도 자식들에게 제 형제의 패륜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사는 게 쉽지 않은 세상,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2 "나는 딸을 고소해 놨어. 집 마련할 돈을 주면 평생 모시고 살겠다고 하더니 집을 사고 나니까 구박하면서 나가라고 하더라고. 결국 쫓겨났어."
이연철 할아버지(78·가명)도 이 쉼터로 피신을 해 왔다. 딸과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얻어맞은 몸과 마음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치유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 하는 내내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연신 내리쳤다.
딸은 아버지가 여생을 위해 모아둔 돈을 '집을 사겠다'며 달라고 했다. 집만 구해주면 평생 모시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고민 끝에 돈을 내 줬다. 그러나 딸은 같이 산 지 3개월이 채 안 돼 구박을 시작했다. 눈칫밥부터 시작된 학대는 밥을 주지 않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아들이 딸 집을 찾아와 "돈을 주려면 장남에게 줘야지, 왜 딸을 주냐"며 싸움을 걸어왔다. 이런 과정에서 딸에게 질려 아들의 집으로 이사를 한 아버지는 그 곳에서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아들이 아버지 통장에서 빼다 쓰는 돈 문제로 말싸움이 붙었다. 그러자 아들은 "지금 내가 당신 돈을 떼먹기라도 했다고 얘기하는 거냐"며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경찰서에 신고해 두 사람은 한밤중에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신체적 학대를 당한 몸도 아프지만, 가장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가족은 천륜이고, 내가 낳아 기른 자식들인데…. 돈 잃은 것보다도, 몸이 아픈 것보다도, 마음 아픈 것이 가장 힘들어." 이 할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15일 노인학대인식의 날을 맞아 돌아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노인학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1명(9.9%)꼴로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학대는 대부분 1년 이상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정서적인 학대로 시작됐다가 폭행으로 이어지고, 심한 경우 존속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발생한 존속살해 건수는 총 159건이다. 일주일에 한 명 꼴로 부모가 자식에게 살해당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인학대는 아동학대 등 다른 학대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인학대신고전화(1577-1389)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국민들이 별로 없고,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존재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노인학대 행위자의 38.8%(보건복지부 조사자료, 2013년 기준)가 아들이었지만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기 싫은 노인들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으로 인해 노인학대 문제의 해결이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학대피해 정도가 심해 형사재판까지 가게 되더라도 부모의 눈물어린 선처 부탁에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들은 노인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주변 이웃들과 가족의 관심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학대를 발견하기만 하면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상담과 관리를 통해 개입할 수 있고, 학대상황이 심각한 경우 노인을 쉼터에서 지내도록 해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결국 노인학대 문제는 드러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신고의무자나 이웃, 함께 살지 않는 가족 등이 관심을 기울여야 노인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488933
[[학대받는 노인②]부모·자식 천륜에 작동멈춘 사법권…끊이지 않는 학대]
아들의 학대로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쉼터로 피신해 생활하던 김혜숙씨(82·여·가명). 신체적 학대로 인해 목덜미에 멍이 들었다./ 사진제공=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내가 저렇게 키워서 그래.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인데, 어떻게 내 손으로 감방에 넣겠어…."
턱에서 가슴팍까지 내려온 검푸른 멍. 김혜숙씨(82·여·가명)는 주름진 손으로 멍든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김씨는 말없이 묵묵히 얻어맞음으로써 낳은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거녀가 도망친 중년 일용직 노동자의 삶. 그 무게가 버거웠던 막내아들 이용태씨(53·가명)는 밤마다 짙은 술내음을 풍기며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때렸다. 김씨의 남편인 이씨의 아버지는 20년 전 세상을 떠났다.
파킨슨병 초기 증세가 있어 손발에 기력이 없고 천식으로 숨이 가쁜 와중에 너무 얻어맞다보니 김씨는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 지난 겨울에는 이씨에게 걷어차인 오른쪽 발목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렇게 맞고 산 지 3년째. 감금폭행 생활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날은 아들에게 때리지 말라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소리도 질러봤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미친 X, 신고하려면 신고해 봐라. 누구 손해겠냐."
"그래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때려. 착한 아들이야. 스스로 술을 끊었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계속된 아들의 폭행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아들에 대해 맹목적인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15일 '노인학대인식의 날'을 맞아 만나본 학대 피해 노인들은 대부분 자녀 등 학대가해자에 대해 양극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을 학대하는 자녀가 밉고 무섭지만 동시에 자식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
그래서 학대자녀의 처벌은 수사기관도, 법원도 하기 힘들다.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존속상해가 형법상 폭행, 협박에 포함되기에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면 처벌이 힘든 것이다.
법원도 판결에 피해자인 부모의 의사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형량 또한 같은 수준의 범죄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난 2월 울산지법은 '무식해 대화가 안 된다'며 69세 노모를 마구 때리다 정신을 잃자 물을 뿌린 뒤 재차 밟은 혐의(폭행)로 기소된 이모씨(35)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어머니가 애타게 선처를 요구한 것이 이유였다.
학대받는 노인들이 가해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도 처벌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당장 학대하는 자녀가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게 되면, 노인 본인 생활이 어려워진다. 징역을 몇 년 살고 온다 해도 돌아온 뒤에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노인학대판정위원회에서 사례판정 업무를 하는 이주형 변호사는 "처벌로 노인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노인들이 생활 측면에서 가해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라며 "학대받은 노인들이 가해자로부터 분리돼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정부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고 나서 강력한 처벌을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학대피해노인쉼터/ 사진제공=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노인학대 문제는 처벌보다는 다친 노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학대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전국 27개의 노인보호전문기관에 피해신고전화(1577-1389)를 통해 신고가 접수되면 사회복지사들이 가해자와의 분리·피해자 상담 등을 진행한다.
아들에게 3년 넘게 장기 학대를 당하던 김씨 또한 지역 사회복지사가 학대상황을 발견해 신고한 뒤 문제가 해결됐다. 노인보호전문기관 복지사들이 김씨를 설득해 아들을 알콜중독 치료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김씨를 학대피해노인쉼터에 살게 한 것이다.
김씨는 쉼터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고 프로그램을 하면서 다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6개월간의 알콜중독 치료를 받고 나온 아들은 술을 끊고 어머니를 더 이상 학대하지 않았고 기관은 계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중이다.
중앙노인보호기관 관계자는 "학대받은 어르신들이 신고만 하신다면 4개월간 쉼터에 모시고 이후에도 집에 돌아가기 힘든 상황일 경우에는 협약을 맺은 전국의 양로원에서 생활을 하실 수 있다"며 "노인들은 스스로 신고하기 어려우니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학대 상황으로 보이는 경우 적극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http://news.nate.com/view/20150616n0279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489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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