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근성으로모은자료

'청춘FC'는 과연 좋은 프로그램이었을까

Flyturtle Studio 2015. 10. 26. 09:06
320x100

 

축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끌었지만... 너무 이상적이었다

 

▲  안정환, 이을용, 이운재 선수가 참여한 청춘FC. 
ⓒ KBS

 

KBS 2TV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아래 청춘FC)이 막을 내렸다. 지난 24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 청춘FC는 공식경기 최종전이던 K리그 챌린지 올스타와의 대결, 대미를 장식하는 자체 청백전 등을 보여주며 약 5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청춘FC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쉽게 성인 축구계에 입문하지 못했거나 좌절을 경험한 선수 출신들이 모여서 축구에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 야구단' 등을 연출하며 이미 스포츠와 예능을 접목하는 시도를 꾸준히 계속해온 최재형 PD가 연출을 맡았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안정환·이을용 공동감독, 이운재 코치 등 축구계 전설들이 참여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축구 미생(未生)들의 완생(完生) 도전기'라는 프로그램의 기획 취지는 최근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청년 실업문제,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이면에서 현실과 도전의 갈림길에 놓인 오늘날 청춘들의 성장 스토리, 인기 스포츠이지만 정작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축구계의 숨은 이야기 등을 조명하며 축구를 잘 모르는 팬들에게도 깊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비주류'의 고군분투기

 

청춘 FC의 주인공인 선수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냉정히 말해 프로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축구계에서 한 번 도태된 경험이 있는 '비주류'들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현실 사이의 장벽, 가족과 주변의 시선, 생계 문제 등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선수들을 '축구'라는 특수성만 제외하면 바로 우리 자신 혹은 이웃들의 일상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특별하지 않은 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청춘의 특권'이라고 청춘 FC는 이야기한다.

 

청춘 FC의 카메라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의 사연과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청춘 FC 역시 엄연히 하나의 구단이고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는 나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메라는 제각기 다른 개성과 장단점을 지닌 인물들의 '캐릭터'를 확실히 잡아냄으로써 시청자들이 청춘FC의 사연과 도전정신에 조금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염호덕, 이강, 김용섭, 최희영, 이웅재, 이도한 등 청춘 FC의 선수들은 방송 기간 내내 프로선수들 이상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선수들 이상의 관심을 받았던 안정환·이을용 공동감독 역시 현역 시절 어려운 개인사로 인하여 험난한 축구인생을 살아야 했던 당사자들이었다. 구성원들의 캐릭터성과 풍성한 사연들은, 어찌 보면 단조로울 수 있는 축구팀의 훈련-경기의 반복이라는 구조 속에서도 청춘FC가 끊임없이 소소한 재미를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다.

 

스포츠를 다루기는 했지만 장르상 예능이라는 정체성을 감안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작위적인 구성이나 '악마의 편집' 유혹에서도 비교적 거리를 둔 것도 칭찬할 만하다. 청춘FC는 다큐 형식을 빌린 리얼 버라이어티나 오디션형 예능 프로그램들처럼 '만들어진' 감동이나 해피엔딩을 포장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장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오성진-이재석의 부상 하차(14, 15회)를 다루는 장면에서도 청춘FC는 젊은 청춘들이 불의의 시련에 대처하는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보여주는 데만 집중했다.

 

 

 

청춘FC, 이런 점은 좋았다

 

▲  청춘FC 중 한 장면. 
ⓒ KBS

 

축구를 좋아하는 마니아들 입장에서도 청춘FC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반 팬들은 잘 모르는 축구팀의 훈련과 준비과정, 라커룸 풍경, 감독의 지도 방식과 축구전술, 선수들의 심리 등 축구라는 스포츠가 어떤 구조와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벨기에 전지훈련 과정에서 국가대표 출신 안정환 감독이 공격수로서의 기술적 노하우를 전수하는 장면이라든가, 투비즈와의 연습경기에서 미드필드 싸움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이을용 감독이 롱킥으로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역습을 주문하는 장면, 게으른 선수들을 자극하는 지도자의 방식 등은 소위 '입 축구' 팬들에게 축구라는 스포츠가 얼마나 전문적이고 섬세한 운동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청춘 FC를 통해 우리가 잘몰랐던 한국 축구, 클래식과 챌린지를 포함한 K리그가 다시 한 번 조명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냉정히 말해 한국 축구의 대중적 인기와 지지도는 국가대표팀과 몇몇 해외무대에 활약하는 스타 플레이어에 편중돼 있다. K리그는 리그 상위권팀들의 맞대결이나 AFC 챔피언리그같은 빅매치조차 공중파 편성이나 생중계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청춘FC라는 방송을 통해 프로 스포츠에 중요한 것은 결국 미디어의 꾸준한 노출과 독자적이고 화제성 있는 스토리텔링에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실력으로는 K리그 클래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청춘FC의 평가전이 경기 때마다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고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청춘 FC가 전력상 앞선 K리그 구단들을 상대로 만원 관중들 앞에서 유독 실력 이상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라는 콘텐츠를 통해 '대중을 공감시킬 수 있는 매력'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축구를 잘하고 못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방송은 방송일 뿐이다? '이후 이야기' 없는 청춘FC

 

청춘FC에 긍정적인 평가 요소가 많았음에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방송 후반부로 가면서 청춘FC는 촉박한 일정과 제작환경에 맞물려 여러 가지 무리수를 남발했다. K리그 챌린지 올스타팀과의 평가전을 둘러싼 갑질 논란 등은 제작진으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 '시한부 팀'일 수밖에 없는 청춘FC의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

 

청춘FC는 친선전을 통하여 K리그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제시했고 프로연맹도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각 구단의 사정이나 팬들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 하고 방송사의 편의와 사정만을 앞세운 '일방통행'처럼 돼버렸다. 이는 그동안 국내 미디어에 적지 않은 피해의식을 안고 있던 K리그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과적으로 청춘FC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돼야 할 축구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그동안 청춘FC가 축적해온 긍정적인 이미지에도 손상을 남겼다.

 

사실 챌린지팀과의 경기전부터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한창 시즌 중인 K리그팀들이 영양가도 없는 청춘FC와의 평가전 상대로 공연히 들러리만 서고 있다는 반감도 조금씩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평가전에서 부상자라도 나왔다면 꽤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챌린지와의 최종전은 비난 여론이 많아지며 이전 경기들에 비해 긴박감이 떨어졌고 실전이라기보다 부상을 더 조심하는 데 치중하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한계는, '과연 청춘FC는 무엇을 이뤄냈는가'라는 의문이다. 청춘FC는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해체됐지만 멤버 중에서 프로에 입단하거나 새로운 활로를 찾은 선수는 없었다. 일부 선수들이 벨기에 투비즈에 영입된다거나, 일부 지역구단을 통해 청춘FC의 재창단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냉정하게 보자.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간 축구를 쉬었던 선수들이 고작 4~5개월 모여 훈련한다고 프로 수준에 근접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청춘FC와 평가전을 펼쳤던 구단의 일부 관계자들은 "현재 청춘FC 중에서 프로에서 통할만한 선수는 솔직히 없다, 챌린지 수준도 어려울 것 같다"라면서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춘FC는 첫 방송 때부터 '도전해도 실패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의 한계를 예고한 셈이다. 물론 제작진이 선수들의 방송 후 취업까지 일일이 보장해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축구에 절박한 청춘들의 꿈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면, 단지 일만 벌여놓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도전의 무게와 후유증을 가늠할만한 책임감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좋은 취지와 명분 그리고 이상적인 결과

▲  청춘FC 중 한 장면. 
ⓒ KBS

 

청춘FC를 위해 생계 문제를 미루고 다시 축구에 도전하거나 혹은 청춘FC 측에서 먼저 권유해 참여한 사례도 있다. 청춘FC가 끝나고 프로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 중에서는 청춘FC 합류 자체를 한때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지난 수개월이 다시 한 번 헛된 희망 고문과 절망의 반복이었을 수도 있다.

 

청춘FC 선수들 역시 이 방송의 한계를 알면서도 도전한 것은 그만큼 축구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야구판 청춘FC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고양 원더스도 3년 동안 운영됐다. 비록 해체하긴 했지만 프로 진출 선수들도 다수 배출했다. 그에 비하면 청춘 FC의 도전은 시작부터 비현실적이었고 감상적으로만 접근한 면이 컸다.

 

담당 PD의 전작이었던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꿈의 구장 프로젝트가 방송이 끝난 후 표류한 것처럼, 처음부터 역량에 비해 감당하지 못할 일만 키워놓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양새는 흡사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축구에 절박한 청춘들의 꿈과 도전을 이용한 또 다른 '열정 페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명분이 있더라도 이상만으로는 좋은 결과까지 보장하지 못한다는 교훈이 곧 청춘FC의 한계이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51025n04798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