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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릴까봐…아파도 숨겨야하는 서글픈 '인생 이모작'

Flyturtle Studio 2017. 3. 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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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리후생 열악한 일자리서 신음하는 노인들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은행 건물 앞에서 구급대원과 70대 여성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건물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부딪혀 허리와 골반을 다친 김모(73·여)씨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자”는 구급대원의 권유를 뿌리치고 “일을 못 나가면 안 된다”며 “회사 사람을 불러 달라”고 외쳤다.


김씨는 은행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 담당 직원이었다. 경비원인 남편과 맞벌이해 생활하는 형편이었다. 구급대원의 설득으로 결국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지만, 병상에 누워서도 김씨는 일 걱정을 놓지 못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실버 취업(중·장년층 일자리)에 뛰어드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정년이 빨리 찾아온 50대 후반도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60, 70대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열악하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근로자 중 68.7%가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68.7%였다.


7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57·여)씨는 2년 전 환자를 돌보다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다가 되레 팔을 크게 다쳤다. 병가를 낼 수 없어 깁스를 한 채 계속 환자를 돌봐야 했다. 그는 “요양보호사나 청소원, 미화원 말고는 이 나이에 선택권이 없다”며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아프고 억울해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말대로 실버 취업은 경비원 청소원 요양보호사 등 한정적인 직업군에 몰려 있다. 대부분 열악한 비정규직이다. 하루만 쉬어도 일당이 사라지고 아프면 그만둬야 한다. 이혜수 서울 노동권익센터 법률상담팀장은 “고령의 근로자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질병이 생기기 쉬운 시기”라며 “이들이 주로 취직하는 경비, 미화 직종은 야간근무가 많아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은 높지만 복리후생이 취약해 아파도 일을 나오게 된다”고 전했다.


실버 취업자는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가 더 어렵다. 산재보다 고령으로 인한 ‘퇴행성 질환’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요양보호사 이모(64·여)씨는 무거운 환자를 옮기는 등의 일을 3년 동안 하다 한쪽 어깨에 근·골격계 질환이 생겼다. 산재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고령으로 인한 퇴행성 질환으로 보인다”고 통보했다.


최경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지원센터장은 “60세 이상 여성들이 주로 하는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며 “다수가 같은 질환을 앓는다면 이는 퇴행성질환이 아니라 직업 때문에 생겼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센터장은 “병가를 보장하고,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74세의 한 경비원은 예초기로 제초 작업을 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산재 인정을 신청했지만 고령의 나이 때문에 업무와의 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3개월 동안 업무 관련 내용을 작성해둔 일지가 있어서 장시간 노동이 영향을 미친 점이 입증됐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경비초소에서 잠을 잘 정도로 열악한 처지”라며 “이를 견디다 뇌·심혈관계 질환을 얻거나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건강 회복이 어려운 중·장년층을 장시간 방치하지 않도록 상병급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직 상태에서 다친 근로자를 위해 실업급여 일종인 상병급여 제도가 있지만, 이 경비원처럼 일하다가 다쳐서 그만두면 자발적 퇴사로 분류돼 상병급여를 받을 수 없다. 몸이 회복돼 다시 구직활동에 나서야만 실업급여 혜택을 받는다. 결국 몸져누워 있는 동안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 고령층은 회복 기간도 길어 이 시기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실버 취업자가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실업급여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빈곤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다. 지난해 12월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년층의 빈곤율(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위소득의 50% 미만)은 46.9%이었다.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은 48.1%가 빈곤층이었다. 이는 18∼65세 근로연령층(11.1%)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고용노동부는 노인 빈곤층의 재취직을 위해 2013년 전국에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25곳 지정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일자리의 질적 개선과 실업급여 개선 등 제도적인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선진국도 노인에게 취업을 장려하지만 시간제 근로를 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전제로 한다”며 “실버 취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영역이어서 사회보험과 함께 연금 등 제도적 지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http://news.nate.com/view/20170309n0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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