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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쌓인 참치캔... "빨리"란 말이 미웠다

Flyturtle Studio 2012. 7. 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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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름을 '피서의 계절'이라 했는가. 방학 동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용돈에 보태고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여름은 '알바의 계절'이다. 편의점, 마트, 과외에서부터 시작해 공장, 택배하역, 엑스트라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청춘들은 오늘도 땀을 흘린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땀 냄새 물씬 나거나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알바 체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말>

연이은 폭염으로 미친 듯이 더웠던 지난 25일, 나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평소라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시간이었겠지만, 그 날은 참치공장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다. 

아침 7시에 참치공장으로 가는 차를 타 7시 30분 참치공장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에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왕에 왔으니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곧이어 8시부터 안전교육이 있었다. '괜히 서두르다가 다치지 말고 천천히 하라', '공장 내에서 달리지 말라', '2층은 추락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자', '장갑을 꼭 끼고 일하라'는 등의 안전교육을 받았다. 

안전교육이 끝나자마자 장갑을 받고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은 제 1공장, 제 2공장으로 나눠어 있었는데 나는 큰 공장인 제 1공장에 배정받았다. 공장에 들어갔지만 몇 분 동안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공장 안은 이미 일을 시작한 후였고, 사람들은 각자 일을 하느라 바빠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참치 공장에서 먹었던 점심. 반찬에는 참치도 있다.
ⓒ 김은희

한 두 마디 했을 뿐인데 "떠들지 말고 얼른 접어"

멀뚱멀뚱 지나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초록색 모자를 쓴 공장의 반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얼른 2층으로 올라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등 떠밀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고 나서야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나 같은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는 일은 바로 '참치 선물세트' 만들기였다. 2층에는 나 외에도 열댓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바쁘게 참치 선물세트 상자를 접고 있었다. 

2층에서 참치 선물세트 상자를 접어 컨베이어 벨트로 1층에 내려 보내고, 밑에서 상자에 참치를 끼우고, 상자의 뚜껑을 닫고, 그 상자를 다시 포장 팩에 넣으면 비로소 참치 선물세트가 완성된다. 

"빨리 접어, 빨리 빨리!"

내가 2층으로 올라간 지 단 1분도 안되어 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여기저기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상자 접기는 2인 1조로 하는데, 4-5초면 상자 하나를 접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상자 접기라 서툴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나와 함께했던 상대방이 친절해서 서툴고 느린 나를 이해해주었다. 

상자를 접는 일은 단순해서인지 손에 빨리 익었다. 서툴렀던 나도 어느새 상자 접기에 적응했고, 빠르게 상자를 접어낼 수 있었다. 상자 접기는 꼼꼼한 손길을 요구하는 일이다. 상자가 구겨지거나 다시 펴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단단한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단단한 모양을 유지하려면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손과 손목이 욱신거리며 아려온다. 

손과 손목이 아픈 것도 상자 접기의 단점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상자 접기의 단점은 '지루함'이다. 빨리 접어서 1층으로 내려 보내야 하기 때문에 대화는 절대 금물이고, 아주 잠깐 쉴 수도 없다. 2시간을 꼬박 상자만 접고 있다 보니, 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대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기계 소리뿐이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함께 상자를 접던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 잠깐을 어떻게 알았는지 공장 직원이 와서는 "떠들지 마! 떠들지 말고 얼른 접어"라고 윽박질렀다. 억울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내가 했던 말은 겨우 '덥다, 목마르다, 지루해 죽겠다'등의 몇 마디였기 때문이다. 결국 3시간 동안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입을 떼지도 못한 채 약 2000개의 상자를 접었다.

"보수가 높아 힘들어도 참고 일해요"

오전에 쉬는 시간 15분을 제외하고, 내내 일만 한 나는 얼른 점심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점심시간은 12시 10분부터 1시까지 50분이었는데,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 참치, 김치, 콩나물국이었다. 나는 더위에 지치기도 했고 입맛도 없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당을 나왔다. 

남은 점심시간동안 힘없이 축 처져서 앉아 있다가, 같이 앉아있던 김 아무개씨(21)에게 왜 참치공장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2학기 생활비 때문에 참치공장에 오게 됐어요. 등록금도 만만치 않은데, 자취하는 비용이며 생활비까지 부모님께 달라고 하기가 너무 죄송해서 방학동안 아르바이트하는 거예요. 참치공장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보수가 높아서 힘들어도 참고 일하고 있어요."

김씨처럼 참치공장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등록금과 2학기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왔다. 이 외에 여행이나 용돈 마련을 위해 온 학생들도 있었다.



▲ 쉬는 시간에 받았던 빵과 음료수.
ⓒ 김은희

'빨리, 빨리'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줄이야 

꿀 같던 50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기계처럼 서야 했다. 오후에는 상자 접기가 아니라, 상자에 참치 캔을 끼우는 일을 했다. 상자 접기보다는 훨씬 재밌었다. 컨베이어 벨트로 접힌 상자가 내려오면 잽싸게 참치 캔을 끼워넣는 일이었다. 

3초에 약 3개씩 참치 캔을 끼우는데,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참치 캔을 미처 채우지 못한 상자가 나온다. 그럴 때마다 공장 직원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너 빨리 빨리 안 끼울래? 여기도 비었잖아!"

22년을 살면서, '빨리, 빨리'가 그토록 원망스러운 적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누가 '빨리'라는 단어를 만들었는지, 왜 이렇게 '빨리, 빨리'라는 말을 지겹도록 외치는지, 안전교육 시간에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더니 지금은 왜 자꾸 재촉하는지,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선풍기 4대에 의존해 약 15명의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참치를 끼웠다. 여자들은 참치 캔을 끼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빨리 끼울 수 있도록 옆에서 참치 캔을 계속 건넸다. 

땀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손에 낀 장갑이 답답하기도 했다. 위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상자는 끝이 없고, 내가 끼워야 할 참치 캔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쌓여있었다. 내가 미처 끼워 넣지 못한 참치 캔은 내 옆 사람이 넣었는데, 혹여 내가 많이 끼워 넣지 못해 옆 사람까지 힘들어질까봐 쉬지도 못하고 계속 참치 캔을 끼웠다.

점심 먹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데다가 덥기까지 하니, 사람들의 짜증은 커져만 갔다. 직원들이 재촉하는 소리에 큰 소리로 대꾸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또 이제까지 내가 살던 세상과는 너무 달라 신기하기도 했다.

나도 덥고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짜증나는 순간에도 웃을 일은 있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잠깐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주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물을 먹으라며 건네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끄러운 기계 속에서 사람들의 고마운 친절을 느끼기도 했다. 

점심 먹고 참치 캔을 끼워 넣은 지 딱 2시간 45분이 됐을 때였다. 쉬는 시간 겸 간식 시간이 됐다. 15분의 쉬는 시간과 함께 빵과 음료수를 받았다. 공장 구석에 앉아, 빵과 음료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냥 집에 갈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지만 내 옆에 앉아 열심히 빵과 음료수를 먹는 또래의 친구들을 보니, 그 생각도 얼른 접게 됐다.

다시 일하는 시간이 됐다. 이번에는 완성된 참치 선물세트를 포장 팩에 넣는 일을 했다. 포장 팩은 마무리 단계로, 참치 캔이 들어있는 상자를 세워 놓고 포장 팩을 위에서 씌우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상자를 접거나 참치 캔을 끼우는 것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일이었는데 무엇보다 완성된 선물세트가 너무 무거워 낑낑대면서 해야 했다. 

집에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며 일하다 보니 안 올 것만 같던 끝날 시간이 왔다. 6시 30분이 정확한 퇴근 시간이었는데, 6시부터는 하던 일을 그만하고 박스를 정리했다. 하루 동안 풀어헤친 참치 캔들의 박스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는데 꼬박 30분을 정리해도 다 하지 못할 만큼의 양이었다. 

'노동'이라는 말, 너무 쉽게 뱉었다 



▲ 아침에 받았던 새 장갑이 몇 시간도 안되 더럽게 변했다.
ⓒ 김은희

6시 30분이 되자, 비로소 나는 공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기계 소리도 없고, 먼지도 없는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 것이었던 장갑이 까매지고, 온 몸은 먼지로 뒤덮였지만 집에 간다는 생각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침대에 누웠다. 참치 공장에서 보낸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가 이제까지 쉽게 내뱉었던 '노동'이라는 것이 정말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종일 내가 접은 약 2000개의 상자, 상자에 끼워 넣은 약 6000개의 참치 캔이 생각나 뿌듯해지기도 했다. 또, 종일 내뱉은 짜증 섞인 말들, 한숨들, 집으로 도망오고 싶었던 기억들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다음 날 나는 참치 공장에 나가지 못했다. 온 몸의 근육이 요동치고, 손목, 팔, 어깨, 허리, 발바닥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잤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주섬주섬 파스를 붙여야만 했다. 주위에서는 하루 일해서 받는 돈보다 파스 값이 더 나오겠다며 우스갯소리까지 해댔다. 

나의 참치 공장 알바는 삼일천하도 아닌 '하루 천하'였다. 파스를 붙이며 다시는 참치 캔을 마주하지 않으리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참치 공장에서 평생 잊지 못할 많은 것을 배웠다.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본 적 없던 내가 몸으로 부딪히며 무언가를 해본 날이었고, 먼지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물을 나눠 마셨던 소소한 행복의 기억마저 갖게 됐다.

또한, '빨리 빨리'를 외치며 재촉했던 직원들이 당시에는 너무 야속하고 미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안쓰럽기도 했다. 참치공장이 지옥처럼 느껴졌던 그 날의 나처럼, 그들도 매일 매일 그 공장에서 도망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폭염주의보가 끊이지 않는 더운 여름 날, 선풍기 몇 대에 의존해 일하고 있을 모든 공장의 노동자들이 존경스러워지는 날이다.




http://news.nate.com/view/20120729n10106?pcvi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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