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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유관순이 당한 성고문

Flyturtle Studio 2017. 5. 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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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유관순 열사

(1902~1920)






서대문 형무소 검거 당시 17세





3 · 1 운동 때 부모가 눈 앞에서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고,




그녀 또한 헌병대에 체포되어 징역 살이와 함께 모진 고문을 받게 됨




<유관순이 받은 고문 기록>


01)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냄


02)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음


03) 위와 호스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뜨거운 물, 변, 다수의 칼날들을 강제로 투입





04) 면도칼로 귀와 코를 깍아내림


05) 입과 호스를 연결하여 물 주입 - 결국엔 몸의 일곱 구멍으로 다 흘러나옴





06)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짐


07) 다른 독립 열사들 앞에서 칼로 양쪽 가슴을 도려냄


08) 물이 든 독 안에 알몸으로 가둔 후 미꾸라지를 풀어놓음

 

(※ 미꾸라지는 구멍을 찾아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음)





09)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상자에 긴 대못을 박아놓고 3일간 가둬놓음


10) 상체를 벗겨 채찍으로 후려침


11) 많은 일본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개줄을 묶은 채 네 발로 기어가게 함


이 밖에 셀 수도 없이 많음




<잔혹한 성고문>


당시 나이 만 17세

여자로써는 특히 치욕적이라 할 수 있는 성고문들 중 유일하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문




바로 '미꾸라지 고문'


일본의 잔인한 성고문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일본의 필사적인 은폐 작업으로

현재 정식적인 고문 기록에 빠져 있음




[미꾸라지 고문을 간략하게 설명한 그림]


미꾸라지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다. 일본 고문관은 이러한 미꾸라지의 습성을 이용해 그녀를 알몸으로 독에 가둔 후 물에 미꾸라지를 풀어넣었다. 


기억하자.

이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만 17살이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소녀>




당시 고문으로 부어있던 그녀의 얼굴을 3D 입체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




그녀가 고문으로 병을 얻자 새로 묵게 된 독방.

제대로 누울 수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을 보여줌



그리고 마침내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무차별한 성폭행으로 인한 자궁파열. 당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자궁과 방광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으며 머리와 몸통, 사지 등이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다. 또한 고문의 흔적으로 코와 귀도 없었다.




이화학당 교장이었던 미스 프라이와 미스 월터가 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했을 때에도,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은 시신을 넘겨줄 뿐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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