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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모놀로그] 합격자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Flyturtle Studio 2014. 1. 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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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합격자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시험이 끝나고 졸업과 입학의 계절이 다가온다. 거리를 걷다가 고개를 올려다보면 합격축하 현수막이 참 많다. 합격축하 현수막이라고 하면 아직은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 고향마을에서 몇 년만에 한 번 고시합격자를 배출했을 때 마을거리와 모교정문에 걸어놓던 그 현수막이 기억난다. 흔치 않은 일이기에 마을 전체의 경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합격축하 현수막은 꽤 평범(?)해졌다. 한 명은커녕 아예 합격자명단을 주루루 나열하고, 강남은 당연하다는 듯 미국대학의 이름도 곁들여진다. 그 뿐인가, 대학합격율이 높다는 몇몇 대학 중고등학교에 합격했다고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건물의 외관을 뒤덮고, 이젠 사립초등학교 합격을 축하하는 영어유치원의 현수막도 보인다. 이 축하의 홍수는 대체 어디까지 바닥을 칠까.


이러한 합격축하 현수막을 내거는 곳은 모두 교육기관이지만 이 행위를 교육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축하를 하고 싶으면 알아서 조용히 그 대상에게 하면 되는데 굳이 이러는 건 그들은 축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장사를 위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광고를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기네 광고를 위해 졸업생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쁜 이유는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 현수막에 영향받아 자식을 그 기관에 보낼 마음이 생긴다면 일종의 정보전달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타인의 자랑거리는 듣거나 보기 즐거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주변에 불합격자가 있을 경우 지나는 순간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필요한 공격을 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합격축하 현수막이 옳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귀아프게 듣고 '좋은 대학 가야 인생 성공한다'는 명제를 노골적으로 강화하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관을 거리마다 입을 모아 통일시키는데 어찌 숨이 안 막힐까. 하긴 이미 이 사회엔 얼마나 많은 현수막이 덕지덕지던가. 그도 그런게 사실 현수막이라는 존재이유 자체가 소통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기'니까. 




글/임경선(칼럼니스트)

http://www.emetro.co.kr/news/newsview?newscd=20140105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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