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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비교] 동양 VS 서양 VS 중국

Flyturtle Studio 2014. 2. 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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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비교] 동양 VS 서양 VS 중국

 

 

 

1. 동양의 초상화 VS 서양의 초상화

 

국내 박물관에 갈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늘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검은색 관복과 관모를 착용한 것도 그렇고 평면적이고 원근법이 결여돼 있는 점도 그렇다. 반면에 서양의 초상화는 자세가 다양하고 복장도 화려하다. 명암법과 원근법도 완벽하게 구사돼 마치 살아있는 인물을 마주하는 듯하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단언컨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화가들의 솜씨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비밀은 바로 동아시아 유교사회와 서구의 인간관의 차이에 있다. 초상화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거기에는 개인에 대한 관념이 투사돼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개인에 대한 관념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탄생과 함께 등장했다. 서구의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지닌 존재’로 정의된다. 이런 관념이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을 중시한 회화전통과 결합해 모델의 개성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초상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모델의 개성 표현에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동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세기 전반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앵그르(1780~1867)가 그린 ‘리비에르 초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상원의원을 지낸 필리베르 리비에르는 왼팔을 상의 안에 찔러 넣고 팔자 다리를 한 것으로 보아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임을 알 수 있고 책상 위에 놓인 루소의 저서와 모차르트 악보는 그가 만만찮은 교양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동아시아 유교사회에서의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기보다 집단의 화합과 안정을 도모하도록 권장됐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인간형이다. 처세를 중시한 건 그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크게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손윗사람과 아랫사람, 친구와 친구 등 다섯 개의 범주로 나눠 관계를 맺는 상대에 따라 그에 걸맞은 행동양식을 발현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성보다는 역할을 중시한 것이다. 따라서 초상화도 개성적인 외모를 묘사하기보다는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유교사회의 이상적인 개인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관료 중에서도 국가의 안녕에 공을 세워 공신(功臣)으로 책봉되는 것은 최상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국가는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사당에 안치하고 주기적으로 제례를 베풀었다. 이런 공신 초상화는 곧 사대부 사회에 제례용 초상화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져 광범하게 제작됐다.

신은 유교사회의 롤모델인 만큼 외형의 치밀한 묘사보다는 역할의 묘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개성보다는 관료로서의 위엄과 고귀한 성품을 드러내야 했다. 그 때문에 자세와 표정의 다양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호랑이 가죽이 덮인 의자에 앉아 하나같이 위엄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후손의 경배 대상인 만큼 흐트러진 자세와 체통을 잃은 표정을 보여서는 곤란했다. 18세기 말의 화원화가인 이명기가 공신 초상화의 양식을 따라 그린 ‘오재순상’에는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초상화의 미적 가치를 서양 초상화와 동일선상에서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양의 초상화는 하나의 예술적 자율성을 지닌 작품으로, 동아시아의 제례용 초상은 집단적 이상을 드러낸 목적 예술로 파악하고 제각기 다른 미적 잣대를 적용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동아시아와 서양의 초상화는 서로 다른 인간관을 바탕으로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예술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10386911



 

2. 조선 초상화 VS 중국 명청시대 초상화

 

초상화란 최근의 용어이고 조선조에서는 영정(影幀) 영진 (影眞)상(像)  진용(眞容) 사진(寫眞)  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의 초상화 기법은 전통적 화법에 음영법, 투시도법 등 서양화풍이 수용되어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18세기 후반 정조대 초상화는 서양화법과 전통 초상화법을 성공적으로 절충시킴으로써 사실성과 한국초상화 특유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정조대 초상화풍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화산관 이명기(李命基, 1756~?)이다.

 

 

 

채제공 초상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명기의 초상화는 피사인물의 당시 심경과 기분을 얼굴에 들어낼 정도로 핍진한 사실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동양의 초상화론인 ‘전신傳神’의 경지에 달한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전통회화기법 속에 신법(新法, 서양화법)을 절묘하게 소화시켜, 붓을 표현매체로 삼는 동양회화의 특성상 음영표현 시 여러 번의 붓질로 인해 얼굴의 색이 어두워지고 탁해지는 단점을 극복해내고 정치하면서도 절제된 필치를 이용하여 사실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맑고 단아한 인물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표출해내었다.

이렇듯 이명기는 ‘당대국수當代國手’라는 칭호에 걸맞게 조선시대 초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조선후기 최고의 초상화가라 하겠다. 

 

 

 

 

 

 

 

 

명나라의 제9대 황제 홍치제
명청대의 초상화는 원근 기법은 강했으나 사실 묘사 감정표현은 없는게 특징 입니다.
시대별 초상화는 기법이 다릅니다 우선 색상을 사용하는것의 차이와 인물의 원근 구도법이 다릅니다.

 

출처

http://goo.gl/dndB5t

 

 

 

 

 

 

참고자료

 

 

동양인 & 서양인 차이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225

서양과 동양의 문화에 대한 토론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3153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동양인의 특징별 유형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3059

서양인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2938

서양인(백인)외모서열 총정리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2356

EBS 다큐프라임 - 동과 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https://flyturtlestudio.tistory.com/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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