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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일베와 행게이 -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Flyturtle Studio 2014. 7. 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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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일베와 행게이 -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시청률 안 나올지 알면서도 GO!

김규형 / SBS 제작본부 PD




프롤로그

“항상 저는 인터넷에서 소외자였습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중하게 제 의견을 피력해도, 단지 이XX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2002년 대선 전에 다음에서 숱한 살해 위협과 욕을 먹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홈페이지. 



방송 후에 시청자로부터 받은, (십여 통 중) 한 통의 항의 메일을 인용하며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이메일 주소를 보니 발신인은 외국의 한 유명대학에 다니는 듯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회원이라는 그는 본인이 일베의 ‘열혈 유저’가 된 경위와 함께, 내가 제작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일베와 행게이 -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편의 내용이 부적절했다는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어떠한 경로(전화, 메시지, 메일 등)든 간에 보통은 답변을 다 해주는 편인데, 이번엔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떠한 단어와 문장에 내 생각을 담아야 할까…. 분명 말이라는 게 행간과 문맥과 다양한 콘텍스트 속에서 각기 다른 이해를 낳는데 이게 또 그의 ‘인증’이라는 행위가 동원되면 쓸데 없는, 그리고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 같았다. 단언컨대, 겁이 나서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도 그들과 합을 겨루는 건 굉장히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표현으로 치자면, 일베 회원 중의 일부는 ‘노답(답이 없음)’이다. ‘노잼(재미가 없음)’이기도 하고. 



“그거야 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공격할 리는 없으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



  방송 서두에는 일베 회원들에게 신상이 털리고 악플에 시달린 ‘일베의 대표 피해자’ 두 명의 인터뷰가 배치됐는데, 그들이 선의의 피해자처럼 출연했다며 메일의 발신자는 위와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현행법을 넘어선 개인 신상 유출이나 기타 범죄에 대해서는 엄벌

에 처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이 ‘당할 만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선뜻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 피해자들과의 만남이 취재의 시작이었는데 그간의 사연을 들은 뒤 방송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고민했던 결론은, 그 둘은 그 누구에게서라도 신상이 털리고 악플이 달려도 당연하게 감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베 회원들 누구에게도 악플을 달아도 괜찮을 면죄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기 없는 방송 소재 – 인터넷 문화

“저는 일베보다 다른 커뮤니티가 훨씬 심각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기타 사이트는 본인들의 의사와 맞지 않는 의견은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받습니다. 일베는, (중략)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것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올리고 토론하지,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고 반대하

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방송 소재를 찾기 위해 PD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 두 가지 중 하나는 인터넷을 뒤지는 일일 것이다(나머지 하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일 테지). 어지러울 정도로 텍스트를 주워 먹다 언젠가부터 온라인 세계는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조용히 있을 사람도 가시를 돋운 채 날을 세운다. 오프라인에서 설득을 당할 개연성도 없기 때문에, 최근의 경향은 논쟁이라는 것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포털별로,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하나의 정치적인 색채를 강하게 가진다. 그래서 메일의 발신자가 언급했던, “본인들의 의사와 맞지 않는 의견은… 공격을 받는다”라는 표현은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네다홍(“네, 다음 홍어~”라는 뜻으로, 반대 의견을 올리는 사람을 홍어로 부르며 대화를 일체 차단해버리고자 하는 일종의 유행어)’ 사조가 지배하는 일베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틀리기도 하다. 



머리 아프게 이 아이템을 왜 했냐는 걱정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 당신의 가족이, 혹은 친구가 일베를 한다고 하면 말릴 것인가? 혐오할 것인가? 아니면 권장할 것인가? 명확한 논리와 입장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일베가 문제가 되고, 언급이 많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할아버지 자살 인증, 강간 모의 등의 패륜적인 내용이 대표적이다. 수십만의 회원이 있는 사이트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만, 양과 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부분에 대해 일베 회원들은 ‘우리가 우파 성향이라 먹잇감일 뿐이다’는 취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 지점에서, 단순히 정치색이 그들을 제거해야 할 목표로 만드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그들이 문제가 많은 건지 하는 기초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 인터넷 세상이나 그 하위문화를 방송의 소재로 하면 ‘그림’이 재미없는지라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 ‘신촌살인사건과 사령카페’를 다뤘던 2년 전의 졸작을 가슴 아프게 회상했다 - 하지만, 그래도 이건 한번쯤 다뤄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알고 싶었다. 방송 제작단계에서 일베를 사랑하는 한 탈북자는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작작하세요. ‘일베’를 이용해서라도 시청률 올리고 싶죠?”라는 트윗을 남겼다. 많은 ‘일베’ 회원들도 우리가 ‘시청률을 노렸다’고 했는데, 그들도 작작했으면 좋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들은 정녕, 일베가 전부고 일베가 대단한 줄안다. 왜 그런지도 궁금해졌다.


인터뷰 위해 호랑이 굴로…

“PD님 얼굴은 과거 다수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뵈었습니다. 그런 만큼, PD님이 방송의 초짜도 아니고 편집의 초짜도 아니란 건 제가 압니다…. 이건 절대 공정한 방송이 아닙니다.”


제작 초기에 가장 중요했던 건, 당연히 ‘일베의 유저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베에서 공유되는 사상과 문화에 동의하고 그걸 충분히 이해하는 유저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언론에서 언급된 사건 속의 주인공만으로는 분명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작가와 고민을 나누고 회의를 해보았지만 가장 명확한 방법은 역시, 일베 안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김규형 PD입니다…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 이후 발생한 상황은 절반만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우선 김규형 PD를 ‘구글링’하여 나의 흔적과 옛 기고와 발언을 게시하는 회원들이 나타났다. 장준하 선생의 사망에 관한 방송을 했던 이력을 두고 ‘좌좀’이라 언급하며 ‘적의’를 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기까진 예상대로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희망하며 전화를 걸어오고, 메일과 메시지를 보내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들은 “일베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건전한 곳이 아니며, 단순히 우파의 놀이터라 보수를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당할 뿐”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발언을 해왔다. 나는 순간 ‘종교’를 떠올렸고 선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하게 제작진의 게시글이 삭제됐다. 연락처와 실명을 남기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회신이 게시됐다. ‘네임드(유명해지는 것)’를 지양하고 익명을 철저히 지킨다는 그 문화에 대해 또 하나의 해석틀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한편,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사와 그들의 문화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조금 더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유저들 몇몇 인터뷰해 놓고 이상하게 일베를 정의하려 한다’는 비아냥에 대비해야 했다.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회원 전부를 인터뷰할 수도 없고, 이들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분석틀이 필요했다. 단순히 비아냥에 대비한다기보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피해 ‘일베의 민낯’을 그릴 수 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PD님, 바로 매장당합니다”

“PD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보여주신 내용들은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통계를 왜곡하는 잘못된 방식입니다. 저희 업종에서는 그런 식으로 실증 검증을 하면 바로 매장당합니다.”


일베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됐다는 방증은, 그 존재와 현상에 대한 여러 분석이 ‘이미 나와 있다’는 점일 게다. 자료조사는 이럴 경우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던 중, ‘예외상태와 파시즘의 한국사회 - 일베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조용신 씨의 논문은 큰 도움이 됐다. 이 논문은 조르조 아감벤이라는 학자의 ‘예외상태’ ‘호모사케르’ 등의 개념을 일베에 접목시켜 설명한 것이다. 인문학적 해석의 문제는 수준이 높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저자는 일베를 해석하는 도구의 하나로서 계량화 가능한 ‘추천 수’를 유의미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글에 추천을 누르는 행위는 결국 그 글이 재미있거나, 공유될 만하다고 느끼거나, 글쓴이의 생각에 상대적으로 크게 동의할 때 발생한다. 일베 회원들의공통분모, 혹은 지향점을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구임에 분명해 보

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며 방송에도 언급된 터라, 분석결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야당에 대한 조롱, 빨갱이와 ‘홍어’에 대한 수상한 혐오, 보수로 평가되는 정치인들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나의 상식으로는, 이 분석틀 자체는 표준정규분포의 기댓값에 가장 근사한 내용을 찾는 작업이고 양극단에 위치한 소수의 내용은 배제하려는 방법론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의 메일의 발신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통계를 왜곡”했다고 비판했으나, 업계에서 매장당할 정도의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통계가 왜곡되지도, 숫자가 매만져지지도 않았음은 분명히 밝힌다.


넓고 다양한 일베 스펙트럼

“그것이 알고 싶다 일베 편은 많이 부족한 듯. (1)일베의 공격성의 바탕에 깔린 열등의식을 정신분석으로 디벼야 했고, (2)일베 운영에 관해 좀 더 깊이 파고 들었어야…. 들어가다 만기분.”

- 진중권 교수(@unheim)의 트윗 중, 방송 후.


방송 후에 일베를 잘 아는 사람들로부턴 “그 비난과 배후 취재에 대한 깊이가 얕다”라는 비판을, 일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턴 “어렵고 역겹다”는 평가를 받았다. 명확하게 타깃을 설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는데, 쉽지 않은 문제이긴 했다. 

  두세 번에 한 번꼴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회자가 되는 편인데, 그 중심에는 ‘공분’이라는 감정이 있다. 사회의 ‘악’을 시청자들이 소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이 감정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만들면서 화가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화제작이 된다, 경험적으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는 비판, 핵심을 다루지 못했다는 비난은 모두 수용하고 공감한다. 담당 PD 입장에서, 제작기간 내내 일베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 확고한 판단을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집단을 악인의 무리로 상정하고 공분을 쏟아내야 할 대상인지를 정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일베를 ‘루저 집단’이라고 일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재미로 일베를 할 뿐’이라는 유저들의 입장에도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디쯤엔가 일베를 규정할 수 있는 적정한 언어가 있을 테지만, 한 시간 안에 설명 가능한 그 단어들을 나는 찾지 못했다. 주소창에 ‘ilbe.com’을 누르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너무나도 다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쓴 박가분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인터뷰이를 구한다고 글을 올렸을 때) 그들이 선행을 인증하고 고학력이라는 사실을 인증하는 상황을 목도하고서, 역으로 그들이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그들의 재미는 결국 위악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라며 그는 그들의 선행 인증이 그 본질을 파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언급했었다. 

  일부는 맞는 것 같지만, 취재가 완료된 시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인증을 한 열혈 일베 유저가 실제로는 착한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담당 PD를 바보로 만들고 조롱하고 배제하려는 과정 자체를 ‘재미’로 보면 박가분의 말은 맞는 셈이다. 철저하게 그 과정은 관용이나 인정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따돌림’의 행태라서 철학적으로는 위악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그건 그냥 학문적인 분석일 뿐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머리 아프게 이 아이템을 왜 했냐는 걱정 아닌 걱정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 당신의 가족이, 혹은 친구가 일베를 한다고 하면 말릴 것인가? 혐오할 것인가? 아니면 권장할 것인가? 그렇다면 명확한 논리와 입장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아예 의미가 없는 방송이었다고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얘기하는 것만큼,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것대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에필로그

방송 후 약 일주일 정도까지는 일간베스트에 들어가 보긴 했다. 일 때문에 제작기간 동안은 그들의 글을 끝까지 감내해야 했으나, 그 뒤론 오래 있기 힘들었다.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욕설을 주고받고, 비난성의 댓글을 남기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재미없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꼰대가 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놀이방식에 피곤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전라도 사람을 극도로 혐오하는 내용으로 본인의 페이스북을 가득 채웠던 한 인터뷰이를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보는 사람이 느낄 기분이나 감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니냐”고. 그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그럴 필요가 있냐”고 답을 했었다. 내 상식으로는 조금이라도 고려를 해야 하는 게 맞다. 그 인터뷰 자리에서, 아니면 방송을 제작하는 내내 그러한 불쾌함의 근원을 조금 더 따져 물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일베가 양산하는 혐오 발언에 비판의 핵심을 뒀어야…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영역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를 논했어야”라고 남겼던 한 블로거의 비평도 그래서 조금은 뼈아프다.





월간 <신문과방송>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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