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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겉으론 ‘창의성’ 외치지만 실제론 기피”

Flyturtle Studio 2012. 1. 2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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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6)

‘인간의 반창의성 편향’ 보여준 심리학 실험결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바버라 스트로치 지음)의 표지 삽화 부분.





즈음 국내 학교나 기업에서도, 과학기술 관련 정부기관이나 학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창의성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인간은 실상 창의성을 혐오하거나 기피한다는, 그래서 창의성 교육이나 정책에도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심리학 실험 결과가 나와 서구에서는 큰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심리학 학술단체로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심리치료와 심리상담 등 분야의 심리학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미국심리학회(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이고 실험적인 심리학을 추구하는 심리학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심리과학협회(APS: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cience)이다. 이 심리과학협회의 기관 학술지인 <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의 11월호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제니퍼 뮬러 교수와 그 동료들이 밝힌 ‘반창의성 편향: 왜 사람들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열망하면서도 거부하나’라는 제목의 실험결과 논문이 실렸다.

 

뮬러 교수 등은 피실험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벌였다. 첫번째 실험에서는 이른바 ‘로또(불확실성) 상황’과 ‘보통 상황’에서 창의성과 실제성에 대한 암묵적 연상반응 검사(IAT: Implicit Association Test)를 하였다. 그 결과, 보통 상황에서는 창의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데, 불확실성의 상황에서는 창의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반창의성)이 나왔다.

 

두번째 실험은 산문을 작성하게 하는 실험이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참아냄(tolerance)이 큰 조건(문제 해결에는 항상 해결책이 여러 개 있다는 식의 산문을 쓰는 조건)과 참아냄이 낮은 조건(모든 문제에는 오직 하나의 해결책만 있다는 식의 글을 쓰게 하는 조건)의 두 가지 실험 조건이 주어졌다. 작문을 한 뒤에는 첫번째 실험 때처럼 창의성과 실제성에 대한 연상반응을 하게 하고, 그 뒤에 “운동화에 나노기술을 적용해 두께를 조정하여 발을 시원하게 하고 보호하자”는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를 7점 척도에서 하게 하였다.


 

두 실험에서 나온 결과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새로운 아이디어이고 이는 자연히 불확실성을 유발한다. 이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2. 사람들은 입으로는(또는 명시적으로는) 창의성을 추구하고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나면 이를 버리고 그보다는 이미 과거에 입증된 해결책을 선택한다.

3. 창의적인 해결책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한다 해도 사람들은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다시 선택하지도 않는다.

4. 사람들의 반창의성 편향은 아주 미묘하여, 사람들은 (해결책을 가져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거스르는) 반창의적 편향에 자신이 사로잡혀 있음을 모른다(인정하지 않는다).

5. 사람들은 겉으로는 명시적인 말로 ‘나는 창의성을 지지하고 옹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암묵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창의성 개념을 ‘구토(vomit)’, ‘독(poison)’, ‘고통(agony)’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들과 연상해 생각한다.


뮬러 교수 등의 실험 연구는, 우리가 말로는 창의성을 찾고 지지하고 육성하며 옹호한다고 하지만, 막상 창의적 아이디어에 마주치면 (특히 기업이나 공공기관이나, 정치 상황 같은 불확실한[불확실성에 대한 참을성이 낮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암묵적으로) 반창의성의 편향을 드러내어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불편해하고, 결국에는 이미 과거에 무난함이 입증되고 적용된 바 있는 해결책으로 귀착한다는 것을 입증하여 준다. 특히나 모호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더 그렇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불확실한 조건에서 판단할 때에는 확률이나 효용 이론으로 따지려 하기보다 일종의 주먹구구식 사고(heuristics)를 하는 편향을 보여준다는 주장(200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의 연구결과)을 지지해 준다.

 

 

 

‘개인적 창의성 개발’ 교육보다는  ‘새로움의 공동 체험 문화‘의 육성이 중요


 

렇다면 창의성을 육성하자 또는 지지한다고 밖으로는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창의성에 대한 양가 감정을 지니는, 반창의성적인 편향성이 우리한테 있다면, 창의성에 대한 교육기관과 기업의 정책, 국가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이 미국 연구자들이, 그리고 이 연구를 인용하거나 평을 한 사람들이 강조한 바이다. “창의성 분야는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현재의 초점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발견하여 알아채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찾으려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출처)

 

창의성에 대해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감하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1년 12월에 출간한 [한국교육과 미래 비전] 책에서 ‘21세기의 창의성 개념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이정모가 쓴 글에서 이러한 생각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개인적 속성으로서의 ‘나(I)-창의성’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한 개인의 창의성이란 실상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여러 사람, 개념적, 물질적 인공물들과 계속된 사회문화적 상호작용에 의해 비로소 발현되는 창의성이다. 개인적 창의성이라고 여겨지나, 사실은 계속된 협동적, 문화적 상호작용 행위에 의해 그 개인을 통해 발현되는 사회적 창의성인 것이다. 그러하다면 창의성의 본질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협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으로서의 ‘우리(We)-창의성’임을 인식하고 이런 새로운 틀에 의하여 창의성을 정의하고, 우리가 국가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교육의 방향이 개인의 개별적 창의성 육성이 아니라, 모두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함께 이루어내는 문화적 창의성의 함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적 창의성, 개인적 영재성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국내 사교육 기관의 잘못된 시도와 공공 교육기관이 창출하는 잘못된 창의성 교육의 폐해를 막고,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국가적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창의성 측면은 상호작용성과 공동작업이 강조되는 요즈음의 인터넷 시대, 사회적 연결망의 시대, 스마트 시대에 더욱 걸맞은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학교 교사들은 이러한 ‘모두 함께 이루어내는 창의성’의 육성을 목표로, 즉 어떤 특정한 새 창의적 결과물을 내는 것 자체보다도 ‘함께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로 학생 개개인의 인지적 활동이 새로워지며 발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학생들에게 가져다 주는 메타인지적 창의성의 체험’ 교육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2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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