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될 예정인 가로 92㎝·세로 1m65㎝ 크기의 한국 전통 초상화.
[사진 한국얼굴연구소]
200년 전 동양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그린 초상화가 방한 중인 교황에게 선물로 전달된다.
전통화법인 배채법(背彩法·한지의 뒷면에 색을 칠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기법)과 육리문(肉理紋·피부결을 따라 붓을 놓는 기법)에 따라 머리카락 한 올, 검버섯 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조용진(전 서울교대 미술교육과 교수) 한국얼굴연구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전통 초상화가 양성과정에 다니는 작가 등 7명이 5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조 소장은 15일 “전통 기법을 동원해 초상화 두 점과 흉상 한 점을 완성했으며 이를 지난 11일 천주교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중 한 점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직후 교황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생명주로 짠 비단에 그려진 초상화 속 교황은 전신 교의좌상(全身 交椅坐像·의자에 앉은 전신상) 자세를 취하고 있다. 2012년 6월 국보로 승격된 태조 어진(御眞)과 같은 형태다. 그림 우측 상단의 ‘프란치스코 교황’ 글씨는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책의 서체인 월인천강지곡체로 쓰였다. ‘가난한 자(빈자)의 벗’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교황의 온화한 미소까지 완벽히 구현된 것은 한국 초상화의 전통철학인 핍진성(逼眞性·변형이나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반면 교황의 손을 그린 것은 전통 초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 이다. 조 소장은 “전통 초상화에 등장하는 왕과 사대부들은 손을 옷 속에 숨기기 때문에 손을 그리는 화법은 발달하지 않았다”며 “교황의 손을 그리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렸다”고 설명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그림 제작 과정에서 의견을 적극 냈다고 한다. 통상 교황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 구두를 신는다. 검소함을 중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 검은 구두를 신고 방한했다. 그런데 초상화 속 교황은 흰색 구두를 신고 있다. 지난 5월께 염 추기경이 “교황의 한국 방문을 기념해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색깔의 구두를 신은 것으로 그렸으면 좋겠다”고 한 게 반영됐다고 한다. 교황을 맞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기쁠 희(喜)’자 3개가 적힌 돗자리를 그려 넣은 것도 염 추기경 아이디어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초상화가 교황에게 전달되면 이를 바티칸 민속박물관에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다른 초상화 한 점과 흉상은 2017년 개관 예정인 서소문역사박물관에 보관된다.
▲ 염수정 추기경이 한국 문화부 전통초상화가 양성과정 원생들이 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 초상화를 소개받고 있다.
염수정 추기경은 11일 오전 교구청 1층 소회의실에서 한국 문화부 전통초상화가 양성과정 원생들의 예방을 받고, 그들이 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 초상화 2점과 흉상을 전달받았다.
이번 작품은 한국 전통 초상화법으로 그린 최초의 서양인 초상화로, 생명주로 짠 비단에 배채법으로 그렸다. 교황은 한국 전통 초상화의 일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가슴에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구해 오는 목자 예수님이 새겨진 십자가 목걸이을 착용하고 있다. 돗자리에는 교황님을 맞는 한국의 기쁨을 담은 한자 기쁠 희(喜)가 그려져 있다.
교황 초상화는 미술해부학 박사 조용진 교수를 비롯, 원생 6명이 약 5개월에 걸쳐 작업했다.
염 추기경은 두 점 중 한 점을 교황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다른 한 점은 2017년 개관 예정인 서소문역사박물관에 수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