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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지만 노예입니다 ④] 시청자에게 기쁨 주는 드라마, 스태프도 행복하려면

Flyturtle Studio 2019. 8. 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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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1억 5천, 톱배우 드라마 출연료에 얽힌 씁쓸한 뒷얘기

 


[오마이뉴스 김윤정 기자]

2016년 <혼술남녀>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오랜 기간 '관행'을 이유로 묵인되어온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방송 스태프들은 주 10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드라마 스태프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염전 노예'에 비유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바뀌는 세상도 슬프지만, 누군가의 죽음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은 더 슬픕니다. 오마이뉴스는 방송 스태프들의 더 나은 일터를 위해 이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편집자말>

"이 바닥이 이렇지 뭐."
"조금만 버텨. 연차 쌓이면 좀 나아져."
"그렇게 힘들면 다른 일 찾아보면 되잖아. 너 말고도 하고 싶다는 사람 많아."

방송 스태프들이 비상식적인 노동 환경에 불만을 제기할라치면, 그들의 입은 이렇게 막히고 말았다. 이들은 언제든 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입을 다물고 잘못된 관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년에 약 120편 정도의 드라마가 제작된다. 과거 지상파 3사만 드라마를 만들던 때에 비하면 시장 규모도, 제작 편수도 어마어마하게 커진 셈. 제작비 규모도 과거에 비해 매우 커졌지만, 스태프들의 처우나 몸값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방송가에서 이들은 언제든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인력이기 때문이다.

대신 몇 백 억 대로 치솟은 드라마 제작비는 몇몇 스타 배우들과 스타 작가들의 몸값을 올리는 데 쓰이고 있다. 이 몸값은, 처음 SBS가 등장했을 때, CJ 등 케이블 채널이 드라마 제작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종편 채널이 나왔을 때, 큰 폭으로 상승했다. 새로 드라마를 내놓는 채널에서는 화제성을 위해 스타가 필요했고, 새 채널로 오지 않으려는 이들을 '모셔'오기 위해 높은 몸값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  배우 이병헌의 <미스터 션샤인> 출연료는 총 36억 원으로 알려졌다.  ⓒ tvN 


드라마 제작비 70%가 배우와 작가에게


드라마 작가의 원고료가 회당 1억을 넘은 것도 김수현 작가가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를 집필하면서였다. 스크린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비지상파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역대급 출연료'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도 한다. 배우 이병헌도 tvN <미스터 션샤인>에 출연하면서 회당 1억 5000만 원, 24부작 기준 총 36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라마 전체 제작비가 약 400억 원이라고 하니, 전체 제작비의 약 10%를 배우 한 사람의 출연료로 지급했다는 말이 된다.

드라마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지만, 방송사들의 광고 수익은 감소하고 있고, 이럴수록 '이름값'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의 몸값은 더 높아진다. 제작비는 제한되어 있으니, 스태프들의 근로 여건 개선이나 복지는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미니시리즈의 경우, 제작비의 70% 정도가 주연급 배우 몇 명과 작가의 고료로 쓰인다. 남은 30%로 드라마 찍고, 10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 인건비도 주고 해야 한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몇 년째 적자를 기록 중인 방송국은 제작비 수준을 대폭 높일 수 없고, 한정된 제작비로 드라마를 완성해야 하는 제작사는 편성을 따내고 흥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스타 캐스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본,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방송 스태프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스타... 제작비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힘든 상황은 맞다. 하지만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한 방송사-제작사와, 개개인에 불과한 방송 스태프들이 고통을 나눠지고 있는 상황은 과연 옳은 것일까?

드라마와 비슷했던 영화 스태프 노동 환경

이런 일은 과거 영화계에서도 벌어졌다. 2000년대 초반, 대기업 자본이 영화로 들어오면서 예술의 장르이던 영화가 '산업'으로 발돋움했다. 영화 산업의 규모는 날로 확장됐지만 영화 노동자들의 처우는 변하지 않았고 임금 체불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영화 스태프들은 다음 카페 '비둘기 둥지'를 거점으로 응집했고, 이는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아래 영화산업노조)이 됐다. 영화산업노조가 발족한 이래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표준계약서 작성 등이 포함된 단체협상이었다.

영화산업노조의 시작부터 함께한 홍태화 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처음엔 대기업과 배급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시작으로 단체 협약 요구를 이어갔고, 2012년 CJ E&M와 CGV, 영화산업노조와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함께 '노사정 협약'을 체결했다.

2014년부터는 모든 대형 영화 배급사와 투자사가 이 노사정 협상에 참여하고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대형 투자사들이 '하루 12시간 근로', '10시간 이상 휴식 보장',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등의 내용이 포함된 단체 협약을 지키지 않는 영화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하자, 현장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이러한 단체협약 내용을 법률로 반영해, 이를 지키지 않는 영화는 국고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이 담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까지 이뤄냈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여전히 일부 소규모 영화나 단편 영화 촬영장 등에서는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는 곳도 있다. 하지만 장편 상업 영화의 경우에는 거의 100% 준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  드라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름값'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의 몸값은 더 높아진다. 제작비는 제한되어 있으니, 스태프들의 근로 여건 개선이나 복지는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다.  ⓒ pixabay 


단체협약이 자리 잡으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상식'의 기준이었다. 현재 방송 드라마 제작 현장처럼 과거 영화 제작 현장에도 '이 바닥은 원래 이렇다', '여기서 일하려면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홍 사무국장은 "지금은 '12시간 노동 12시간 휴식', '표준계약서 작성'이 정착돼,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식적인 노동 환경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줄었다. 스태프들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12시간 이상 촬영은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도입 초기에는 반발도 있었다. 직군마다 연차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단협이나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임금 손해 등을 보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내 급들의 근로 여건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당시 월 70만 원 정도 받고 초 장시간 일하던 막내들의 월급은 최저 임금 등이 보장된 표준계약서의 도입으로 250만 원 선으로 상승했다. 근로여건도 개선됐다. 현재는 단협과 표준계약서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이 영화 제작 현장의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영화 현장의 인식도 달라졌다.

홍 사무국장은 "처음엔 영화 스태프들 내부에서도 표준계약서와 단체협약에 반발하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그 분들을 굳이 설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하게 변화를 요구하다보면 다수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다"면서 "단기간에 모두에게 노조의 필요성과 단체협약, 표준계약서의 중요성을 설득하기 보다는, 10년 뒤를 내다보고 꾸준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탁종열 소장은 "(영화산업노조에서 성과를 거둔) '노사정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과 함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스태프들이 한빛센터에 제보를 하면 한빛센터가 방송 스태프들을 대신해 방송사나 제작사에 시정을 요구한다. 이후 방송사나 제작사가 해당 작품 현장에 추가 스태프 투입, 노동 시간 단축 등의 조치를 취한다. 문제는 이후 같은 방송사, 같은 제작사의 드라마에 비슷한 일이 다시 반복된다는 점이다. 방송 제작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문제가 불거진 건에 대해서만 일대일 개선 조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유기> 스태프 추락사고 이후 달라진 현장 분위기는 탁 소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부상당한 스태프 이아무개씨가 언론노조 조합원이었기에 언론노조가 사고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항의했고, 근로감독관 등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고 조사한 뒤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 하나하나에 고발 조치를 취했다. 그 중 하나가 산업안전기사 미배치에 대한 건이었는데, 관계 당국이 이를 처벌하자 모든 드라마 제작 현장에 산업안전기사가 배치됐다.

탁 소장은 "지금까지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이유로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을 방치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빠른 시간 안에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찾아 적극적으로 처벌한다면, 현장은 빠른 속도로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 노동인권 있는 드라마 현장 촉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탁종렬 소장이 26일 오후 tvN 새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가 열리는 서울 논현동의 한 웨딩홀 1층에서 '노동인권이 있는 드라마 현장'을 촉구하는 드라마 세이프(Drama Safe)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배워야 

 
약 두 시간 분량의 장편 상업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데는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 장소 섭외와 콘티 제작 등 준비 기간이 최소 4~6개월이며, 3~4개월의 시간 동안 약 50회 차의 촬영을 한다. 이어 편집 등 후반 작업에 3~4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첫 방송 6주 전쯤 4부 정도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첫 촬영을 시작하고, 방송 4주차가 지나면 섭외-촬영-편집이 생방송급으로 진행된다. 1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드는 데 보통 3~4개월 동안 100회 차 안팎을 촬영하는데, 같은 기간에 두 배 더 찍어서 영화 8편 분량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스태프들은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제작 기간과 제작 회차를 늘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국 이것은 제작비와 직결되는 사항인데, 최근 수입이 많이 줄어든 방송사나 제작비 상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제작사가 바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홍태화 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영화 현장에서도 초반에는 이런 반발이 있었고, 실제로 제작비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영화 제작비 규모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 제작 효율성을 높이면서 제작비 절감이 이뤄졌다면서,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의 예를 들었다.

"할리우드는 방송이든 영화든, 콘티대로 찍어야 합니다. 콘티와 다른 방향으로 찍으려면 15일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해요. 결국 콘티가 곧 영화고 드라마인 거죠. 지금 영화와 드라마 현장의 차이도 이 콘티예요. 어떤 장면을 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 찍고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전 계획 아래 필요한 장면만 찍어야 합니다. 돈도 줄이고, 시간도 줄이고, 스태프들이 느끼는 피로도도 줄일 수 있어요. 효율성을 끌어올려야 해요."

 

▲  최대 제작비가 투여되든 말든, 기록적인 시청률이 나오든 말든, 스태프들의 근로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 pixabay 


사랑과 정의 전하는 드라마, 스태프도 행복하려면


'스태프지만 노예입니다'는 노동자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한 스태프들의 상황과, 스스로를 '염전 노예'에 비유한 <아는 와이프> 스태프의 편지글에서 따온 것이다. 많은 스태프들이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않은 채, 초 장시간 노동을 당연하듯 요구받고, 다쳐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심지어 고용 불안 때문에 불만을 떠들 수도 없다.

기사가 연재되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여러 피드백을 받았다. 그 중에는 드라마 스태프들 중 월 수천만 원대의 수익을 올리는 이들도 있는데, 왜 그들의 불만만을 전달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월 수천만 원 대의 돈을 버는 스태프도, 하루 20시간 일하고도 일당 10만 원을 손에 쥐는 스태프도, 모두 누려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노동 환경 조성을 현장 책임자인 감독 개인의 인성이나 연출 스타일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일상의 안식처와도 같다. 드라마는 꿈과 희망, 사랑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은 당연하게 과로를 요구받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누군가 죽거나, 죽을 만큼 다친다. TV 너머 노동자들의 고통을 알고도 웃으며 방송을 볼 수 있는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시청률은 별달리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라마가 성공하고 나면, 그 열매는 오로지 배우, 작가, 감독의 몫.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여되든 말든, 기록적인 시청률이 나오든 말든, 스태프들의 근로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 고생해 일한 대가는 누군가에게는 돈으로, 누군가에게는 명예로 주어진다. 하지만 대다수 스태프들은 그저 '보람'만을 손에 쥔 채 피로를 안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903133900949

 

 


[스태프지만 노예입니다 ①] "저 좀 살려주세요"... 유명 드라마 제작 현장의 비극
[스태프지만 노예입니다 ②] 드라마 스태프만 아는 아찔한 상황들... 왜 도망가나 했더니
[스태프지만 노예입니다 ③] "과로사 아니"라던, 서른살 드라마 스태프 죽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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